by lemonfresh Jan 17. 2022
지난주에 딸네 집에 다니러 갔을 때의 일이다. 하룻밤 자고 났는데 점심때쯤 되니 어지럼증이 생겼다. 열을 재 보니 37.3도가 나왔다. 깜짝 놀랐다. 다행히 37.5 이하이긴 했지만 일반적인 체온이 아니었다. 혹시 코로나 증세가 아닐까? 그래서 남편에게 전화했다.
“열이 나요. 집에 가야겠는데 어지러워서 나 혼자 못 가겠어요. 혹시 모르니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없고.”
큰일이었다. 혹시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어쩐담. 어쩐지 아까부터 기분이 가라앉고 아무 일도 못 하겠고 갑자기 모든 게 어려워지더라니...!
“그럼 데리러 갈까?”
“네. 그러면 좋겠어요.”
3차 접종까지 했기 때문에 별일 없을 테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남편이 서울로 출발을 했다.
그런데 삼십 분쯤 지나니 다시 기분이 밝아졌다. 외손자도 봐주고 점심 식사 준비도 했다. 어느새 다시 평상심을 되찾았다. 남편을 아산서 서울까지 급히 올라오게 해 놓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으면 안 되는데?
‘남편이 온다고 하니 마음이 안정된 걸까?’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그런데 잠시 후 생각해 보니 다른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해열제를 먹은 것이다. 딸이 내게 타이레놀을 한 알 주어서 먹었는데 얼마 지나니 열이 떨어졌다. 그러고 나니 다시 기분과 의욕이 돌아온 것이다. 알약 하나가 심신에 이렇게 크게 작용을 할지 몰랐다. 타이레놀은 그동안에도 종종 먹었었지만 이렇게 고맙기는 또 처음이었다.
‘아, 약이 이런 거구나~!’
드디어 걱정하던 대로 남편이 도착을 했다.
“좀 어때?”
“이젠 괜찮아요.”
나는 남편 눈치를 살폈다.
“나았어?”
“네. 약 먹었어요. 점심은 드셨어요?”
“당신 전화 받고 밥 먹다 말고 올라왔지.”
“아이구, 밥 다 먹고 오시지."
표정과 말투를 보아하니 안심해도 되겠다.
"이왕 오셨으니 저것 좀 치워주세요.”
외손자 애기 때 쓰던 신생아 침대를 이젠 치워야하는데 폐기물 스티커도 받아와야 하고, 간단히 들어 움직일 수도 없고, 수속이 복잡해서 못 치우고 있었다. 사위는 직업 특성상 집에서 얼굴 보기도 어려운데다가 주말에도 나가는 날이 많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한다. 남편이 잠깐 보더니 해체해서 차에 싣고 내려가서 처리하는 게 쉽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왕 올라온 김에 여러 가지 치울 것들을 다 내놓으라고 해서 차에 실었다.
물건 하나 내 놓는 것도 요일과 시간이 다 정해져 있다니, 서울 사람들은 괜찮은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는 못살겠다. 우리 동네는 종량제 봉투와 재활용 폐기물을 언제든지 내놓을 수 있는 수거장소가 있다. 내가 게을러서 못할지언정 누가 말려서 못하지는 않는다.
대충 치우고나자 남편이 내게 물었다.
“언제 갈겨?”
볼일 다 보았으니 내려가자는 뜻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하루 더 있고 싶었다.
“내가 하루만 더 있으면 방이랑 거실이랑 정리가 다 될 것 같고, 음식 재료 가져온 것도 아직 다 못 썼는데... 나는 내일 가면 안 돼요? 약 먹고 살만하니 맘이 금방 변하네.”
“......”
남편은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이 곧바로 가지 않고 외손자를 봐주었다. 그 덕에 딸은 옷장 정리를 마저 하고 나는 얼른 깍두기를 담았다. 그리고 저녁을 지어서 같이 먹었다. 다행히 남편이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이해해 주었다.
“당신 혼자 내려가도 되겠어요?”
“그러지 뭐. 내일 올 때 전화해.”
“네. 표 예매하고 시간 알려드릴게요.”
남편이 와서 거추장스러운 물건도 해결해 주었고 외손자도 잘 봐 주었다. 그냥 부탁했으면 올라오지 않았을텐데 내가 열이 나는 바람에 일이 쉽게 되었다. 그러나 맹세코 내가 속임수를 쓴 것은 아니다. 내 질문에 체온계는 숫자로 답을 했고 나는 실제로 어지러웠었다.
“아이구, 할아버지 오시니까 좋네. 애기도 잘 놀고, 엄마랑 할머니랑 일하는데 능률도 오르고.”
생각해 보니 열이 나는 데는 타이레놀이 약이었고, 집안의 어려운 문제는 남편이 약이었다. 그러고 나서 남편은 밤길을 혼자 운전해서 내려갔다.
“엄마, 아까 몇 시에 약 드셨지?”
딸이 내게 물었다. 내가 먹은 약의 효과 지속시간이 8시간 정도라니 약효가 떨어지는 시점을 가늠해보려는 것이다. (서방정의 뜻도 처음 알았다. 약효가 서서히 나타난다는 뜻이란다.)아침에 잠깐 어지러웠지만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는지 약효지속시간이 지났어도 별 증상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다. 약 한 알에 사람 상태가 그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그래서들 이런 걸 ‘약’이라고 하는구나. 음식이나 다른 것으로는 안되는 일을 약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가. 열 좀 난다고 금방 땅으로 꺼질 것 같던 기분이 해열이 되니 금세 의욕이 솟아나지 않았나. 그래서 결과적으로 약이 정신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듣자하니 먹는 코로나 치료제가 나왔다고 한다. 효과가 꽤 좋다하니 반가운 일이다. 그 약 이름은 모르겠지만 코로나에 저당잡힌 만남과 운신의 자유를 되돌려줄 특효약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