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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Dec 22. 2022

한 문장을 말하라면...

일기_2022.1222

오늘 한 작가를 만났다.

작가에 성별을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독특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자면 말하는 게 좋겠다. 그는 그녀라 칭하는 게 맞다.


일 관계상 나는 그림이나 조각, 설치 같이 미술 장르의 작가들과 문학을 하는 이들을 두루 만나고 있는데.

그녀는 화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드물게 고전적인 작가의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사람이다. 작업하는 일 외에 외부와의 접촉은 꼭 필요한 일 아니면 거의 나서지 않는.

그녀를 개인적으로 두 번 만났는데, 두번 다 그녀의 작업실에서였다. 그녀는 집 아랫층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집이 곧 작업실인 셈이다.

그런데 그녀와 가만히 마주 앉아 있으면,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저 깊은산 어느 골짜기에 묻혀있는 은자의 집을 방문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전주가 작은 도시라지만 그래도 아주 시골도 아니고 시내에 자리한 집인데!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전주도 아니고, 도시도 시골도 아닌, 고적한 어느 다른 세상으로 진입한 듯 느껴진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말수가 별로 없는 그녀와 드문드문 얘기하면서

한 시간 반쯤 앉아있다가 돌아왔다.

첫번째 방문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때 전시회 의논을 했는데(지난 9월이었을 거다),

그뒤 그녀는 새로 10여 점을 그려서 내게 보여주었다. 정말 열심히 했네... 나 자신을 새삼 반성하면서 작품들을 보았다.

탕약을 고듯이 고요하고도 찬찬히 자신의 작품 색깔을 우려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얼굴과 눈빛이 참 맑은 사람.  자기 속으로 가라앉아있는 사람이 지니는 눈빛이었다.

나도 가만히.. 차분해져서 돌아왔다.


그녀는 말할 것이다.

'나는 그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나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Je ne suis que le sujet du verbe 'ecrire''

(나는 '쓴다'는 동사의 주어일 뿐이다)

이럴 수 있는가. 이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남부끄럽게 어찌 작가란 말을 할 수가 있나.

내 삶을 드러낼 수 있는 한 문장은 뭐지?


그녀는 작가였다.

나는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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