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또다른 내가 태어나
어쩌면 나는 먹다 버린 뼈다귀, 쓰레기봉투 속에서 밖을 내다보네 커다란 발들이 왔다가 사라지고 작은 주둥이가 킁킁- 길고양이야 들개들아 너희 혓바닥이 나를 핥으면 너희가 밟았던 길들이 눈앞에 나타나지 나를 그리 데려다줘
고양이가 나를 물고 지붕을 건너뛰자 나는 줄을 타고 미끄러지는 케이블카가 되었네 어둠 속에서 더 찬란해지는 동화(童話)- 발 아래선 커다란 도마뱀이 불빛을 내뿜고 있네 맨들맨들하고 차가운 다이아몬드가 등에 박혀 있어 꼬리를 휘두를 때마다 시퍼런 야생들이 일어나네 야생이 너무 시퍼래서 나도 그 한가운데로 떨어졌어 나는 기세좋게 불빛을 쏘아대는 전광판이 되었네
나는 이름들의 산도(産道), 이름들이 펑펑 터지며 내 몸속을 지나가네 그것들은 춤추고 노래하지만 나는 어떤 것도 붙잡을 수 없네 그렇다고 내뱉을 수도 없어- 밖으로 튀어나온 말들이 공중에서 사그라드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그냥 서 있네 수많은 눈들이 반짝이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전광판은 슬픔으로 녹슬어 버려졌어 차가운 바닥에 팽개쳐져
나는 흩어졌네 낱낱의 퍼즐조각으로- 조각난 구름, 조각난 산, 거울을 두른 길고 긴 방, 날리는 커튼 자락, 촉촉한 입술, 부드럽게 다가오는 입술은 울거나 웃지 나는 이름을 버린 사람만 드나드는 고요하고 오랜 숲으로 가네 명랑한 얼굴들이 나를 묻히고 행진하면 나는 은가루처럼 부서지지 햇눈처럼 녹아내리지 몸 속으로 들어가 다시 또 몸 밖으로 나와 나는 이제 어디에나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