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나 자신에게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분명히 다른 사람과 뭔가가 다른데,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 왜 다른지 모르겠는 거다.
'순수하다'거나 '때가 덜 묻었다'거나, 그런 말을 듣기도 했지만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얼마전에 혼자 끄덕끄덕했다.
그러니까 난 틀이 없는 거였다.
위도 아래도 없고, 껍데기와 내용도 크게 분간치 않는다. (이렇게 쓰니 너무 개념없는 것 같지만)
격식과 형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그걸 잘 모른다.
보통 때는 잘 티가 나지 않지만 예민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엄청 신경 쓸 일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의식조차 못한 채)
해버릴 때 티가 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개 모든 관계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틀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틀을 벗어나는 일은 여간해서는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관계에서의 틀을 잘 생각지 못한다.
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사회적인 위치에서가 아닌
그냥 한 개인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런 건, 뭐 순수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꽤 위험하다.
나는 '또라이'라고 보여질 수도 있다.
게다가 나는 이런 또라이적 기질을 상대방도 가지고 있기를 기대한다.
(나와 말이 통하면 상대도 나 같을 거라고 지레 짐작해버린다)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인지, 최근에 정말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깨달았다.
나는 틀을 가지지 않을지언정, 상대방의 틀은
그것대로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주어야 한다고.
물론 내가 그렇게까지 무식하진 않으므로
사회적인 틀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기본 예의는 다 지키고 산다.
다만 속을 들여다보면, 내용적으로는 그렇다는 뜻이다.
얼마전에는 속으로 조금 슬프기도 했다.
나랑 동류인 줄 알았는데 (나랑 비슷한 또라인 줄 알았는데)
그는 아주 정상적인 시민이었던 것이다.
상대방의 틀을 인정하고 용납해주어야 한다는 것.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별 생각이 없는 이들에게는 관대했으면서도
(애정이 가는) 상대방에게는 틀을 깨라고 강요했었다.
그런데 틀을 갖지 말라는 것조차 내 기준이고 틀이었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나=너'의 등호는 아무래도 환상적이다.
안과 밖으로 나 있는 점 하나가 우주를 가른다.
아무래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