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어째 갈수록 부끄러운 일이 돼간다.
예전에 특정 주제를 가진 칼럼을 쓸 땐 느끼지 못했다.
그안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걸 쓰면 됐으니까.
(지금도 칼럼 같은 걸 쓸 때는 좀 낫다)
그런데 시를 쓰면서부터는 나 자신이 뭐랄까,
온통 뒤집어지는 것 같아서 어지럽다.
너무 빤히 보인달까.
내가 다른 시들을 보고 느끼는 것들도 겁나고
(때로는 시건방을 떨고 때로는 데친 시금치처럼 주눅이 든다)
내가 시를 쓴다는 일도 아득해진다.
대체 무엇을 쓴다는 말인가.
왜 쓴다는 말인가.
꼭 써야만 할 게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고.
억지로 쥐어짜고 고민해서 쓰는 건 아니라고.
절절한 사랑고백처럼, 도저히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말이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글들은 얼마나 된단 말인가.
멋지게 쓴, 폼나는 글들은 지워버려라.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차고도 넘친다.
너는 무엇을 보는가.
너는 어떤 사람인가.
그것이 시인 것만 같아서..
가끔 참으로 아득해진다.
시인이라 불리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여기게 될까봐
그것도 두렵다. 그 호칭은 생각보다 담백하지 않다.
그안에 깃들어 있는 어떤 문화예술적 허영심은
부르는 이에게나 듣는 이에게 모두 해당된다.
어떤 시인은 '시를 잘 쓰기 위한 방법'이라며 특별한 비법인 양
몇 가지를 얘기해 줬는데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래도 차마 "그렇게 잔머리를 굴려서 시를 쓴다고요?" 되묻진 못했다.
그는 시 조립공인가? 그렇다면 대체 공장 생산직 노동자와 다를 게 무엇인가.
취급품목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시인이란 호칭은 칼날 위에 서있는 호칭이다.
아니면 뜨거운 떡시루 위에 앉아 있든지.
(고소하고 맛있는 떡만 생각하다간 엉덩이가 데일 것이다)
어제는 눈이 펑펑 오더구만.
볼 수도, 잡히지도 않는 애인이 무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