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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Sep 27. 2024

모자 속에서

-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맞춤한 모자 하나가 있어

그속에 목을 감추었다

아무도 내 목을 보지 못한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목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는 거품이 부글대는 바다

유화물감처럼 생을 덧칠한 바다가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햇볕에 말라간다

몽골고원 사슴의 흰 뼈처럼

말들도 유창하게 말라 바스라지고

먼 곳에서 걸어온 발들도 잠들지 못하고


모자 속에서 입을 다문다

갈 길도 없고 올 길도 없어

불타는 눈으로만 가득 차 있는 바다가

촛농 같은 가슴들을 뚝뚝 떨어뜨린다

이 소리들 거기서 흘러나온 게지

밤이고 낮이고 이 소리들


그 소리 얼려 모자 속에 넣는다

소리가 녹으면 흐느낄 테니

녹지 말라고 꽁꽁 싸매어 내 굳은 목 옆에 누인다

흘러도 좋을 날 소리로 흐르라고

수억의 눈 중에 하나의 눈이 모자 속에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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