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타야 할 곳을 잊어버려
계속 그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만 같아요
아닌가요?
창밖으로 지나치는 저 얼굴이
모르는 얼굴이라고는 도저히 말하지 못하겠어요
언젠가 봤던 얼굴, 어쩌면 내 얼굴일지도 몰라
뱀이 벗어놓은 허물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습니다
나는 이제 다른 귀, 다른 입술을 찾아 떠나요
안녕,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나는 다른 얼굴로 태어나요
어느 역에선가 떨어뜨린 게 있는데
그게 뭔지는 생각나지 않아요
돌아보면 하나씩 두고 온 게 있습니다
껍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어요
어떤 것도 온전하지 않았다는 걸 빼고는
가장 끔찍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가장 끔찍한 추위를 피했어요
그래서 이젠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끔찍한 것도 때론 미덕이 돼요
이봐요, 무슨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건가요?
여기가 환승역이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저 말소리는 안내방송이었다는 것을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수천의 갈림길이 생겨서
부들부들 떨다가 이제야 겨우 알았어요
어느 개찰구로 나가도 되는군요
나는 환승역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지 못하지만
이런 귀머거리 상태가 얼마나 정다운지요
듣지 못해서 나인 채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모르는 척 당신들에게 인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