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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Sep 27. 2024

환승

-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갈아타야 할 곳을 잊어버려

계속 그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만 같아요

아닌가요?

창밖으로 지나치는 저 얼굴이

모르는 얼굴이라고는 도저히 말하지 못하겠어요

언젠가 봤던 얼굴, 어쩌면 내 얼굴일지도 몰라


뱀이 벗어놓은 허물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습니다

나는 이제 다른 귀, 다른 입술을 찾아 떠나요

안녕,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나는 다른 얼굴로 태어나요

어느 역에선가 떨어뜨린 게 있는데

그게 뭔지는 생각나지 않아요

돌아보면 하나씩 두고 온 게 있습니다


껍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어요

어떤 것도 온전하지 않았다는 걸 빼고는

가장 끔찍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가장 끔찍한 추위를 피했어요

그래서 이젠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끔찍한 것도 때론 미덕이 돼요


이봐요, 무슨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건가요?

여기가 환승역이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말소리는 안내방송이었다는 것을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수천의 갈림길이 생겨서

부들부들 떨다가 이제야 겨우 알았어요

어느 개찰구로 나가도 되는군요


나는 환승역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지 못하지만

이런 귀머거리 상태가 얼마나 정다운지요

듣지 못해서 나인 채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모르는 척 당신들에게 인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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