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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원 작가 Jun 25. 2021

600명이 1만 명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600명이 1 명과 싸워 이길  있을까?

여기 그 불가능한 싸움을 시작한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성인이 아니라, 아직 부모의 온기가 필요한 소년들이다. 나는 매년 6월 25일이 되면, 그 소년들의 마음을 떠올린다. 사진에서 보듯, 소년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순간에도 당당했으며 눈빛 역시 태양보다 뜨거웠다.


치열하게 싸웠던 6·25전쟁 때, 실제로 소년병 600명이 인민군 1만 명과 싸워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기록이 있다. 18세 미만의 소년들로 구성된 소년병들은, 자기 키만한 총을 잡고 겨우 1주일간 훈련한 후, 지옥보다 처참한 전쟁터로 뛰어들어야 했다.


아래에 소개하는 글은 한 소년병의 편지다. 살아서 어머니 곁에 가고 싶었던 소년병은 안타깝게도, 1950년 8월 포항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이 편지는 그가 숨진 후, 주머니 속에서 발견되었다. 죽음이 두렵고,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고통에 떨며 하늘로 돌아간, 어린 소년병의 마음을 읽어보자.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마도 10여 명은 될 것 같습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가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 그저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풀내 나는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청결한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 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를 두려움 속에서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두렵고, 막연하고, 한없이 답답한 마음이 전해지는가? 하지만 그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라를 위해 싸웠다. 그게 얼마나 숭고한 정신인지도 모른채, 그는 그저 당연하다는 듯 생명을 바쳤다.


따뜻한 곳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즐기는 게 일상이 되면, 그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배부른 게 당연하고, 따뜻한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그것을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위해 생명을 버린 사람들의 거룩한 정신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평’보다는 ‘감사’해야 하고, ‘불행할 이유’보다는 ‘행복할 이유’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 주어지는 이 고통마저도,

내가 살아 숨쉬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삶의 기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게 바로 오늘도 고마운 마음으로,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야 할 모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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