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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원 작가 Sep 12. 2021

어떤 예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예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난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야.”

“조금 아픈 건 느껴지지도 않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는 사람 중에 정말 말처럼 사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평균보다 참지 못하고 작은 아픔도 크게 느끼며 오히려 상대를 못살게 만든다. 그래서 강력하게 자신의 참을성과 인내력을 주장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아주 잠시 참고는 이렇게 쏘아붙이며 당신을 닥달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내가 말 안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어.”

그들이 순간적으로 참았던 이유는 참을성이 좋았거나 상대를 배려한 것이 아니었으며, ‘두고 보자’라는 마음으로 화와 분노를 내면에 조금씩 쌓아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중에 결국 모든 것을 쏟아내면, 그가 참았던 세월도 모두 사라지는 거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며 분노를 멈추지 않는다. 당연히 상대의 이야기도 듣지 않는다. '나만 옳다. 내가 천사다. 왜냐하면 나는 많이 참았으니까.'라는 원칙을 매우 강하게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참은 모든 시간은 결국 나중에 터질 모든 감정 폭발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제력을 내세우거나, 몸이 아픈 것도 적당히 아픈 것은 전혀 아프게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약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아픔에 민감하지 않은 내가 이렇게 아픔을 호소할 정도인데!"

"참을성이 엄청난 내가 참을 수 없을 정도인데!"

나중에 이런 식으로 공격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제의 본질에는 바로 이것이 있다.

“그들은 대체 왜 참을성을 강조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소한 것도 참아야 할 정도로 예민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아닌 것이 그들 눈에는 참아내야 할 고통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참을성이 강하다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약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공격하기 위해 참는 모든 행위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들에게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아무리 예쁜 언어와 선한 마음도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할 수 없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다. 누구든 모두를 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들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안타깝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의 태도로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니 그렇게 이해하고 넘기면 된다.

“세상에는 예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자유롭게 놔줘야 한다.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으니,

그에게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게 보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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