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라오는 순간들

by 유을

몸은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

뜨거운 것을 만지면 나도 모르게 앗 뜨거워-하며 손을 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상처에 대한 기억은 몸속 깊숙하게 남아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다시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을 떠오르기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에는 땀이 나며 과거의 감각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뒷목이 뻣뻣해지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는 했다.


그러고는 ‘나는 아직도 괴로움을 극복하지 못했구나’ 하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울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20대 때에는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무례한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 그때는 그게 상처가 됐는지도 모른 채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 맞서 싸우고는 했다. 부당하다는 것을 이야기할 줄은 알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상처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먹만 뻗을 줄 알지 가드는 하지 못했던 나의 마음은 이미 상처투성이인 채였던 것이다. 나는 분명 맞서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같은 상황을 다시 겪을 때마다 몸은 더 빠르게 반응했다. 몸은 움츠려 들고 눈물은 왈칵 쏟아져 내렸다.


상처받은 것을 인정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했었다. 싸우는 것은 오히려 쉬웠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인정하는 용기는 없었는데, 그래서 스스로 상처받았다는 것을 인지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무례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경험을 겪고 나서야 내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울할 때는 꽃을 사서 꽃 향기를 맡고, 밖을 걸으면서 상쾌한 공기를 느껴보라고는 하는데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주 사소하고 익숙한 일상의 이 행위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나의 마음을 ‘현재’, 바로 지금 이 순간으로 데리고 오는 과정인 것이다. 나의 코로, 후각으로 꽃 향기를 느끼는 바로 지금 현재의 순간. 다리를 움직여 걷고, 피부로는 햇볕을 느끼며 따뜻해져 오는 몸의 온기를 느끼는 실존하는 현재의 나의 몸으로 말이다.


상처받은 나의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지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길을 만드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누구나 초행길은 헤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길을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 멀기만 했던 길이 짧게 느껴지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점점 몸과 마음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아주 가깝게.


무언가 답답하고 괴롭다면 자기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나의 마음이 지나갈 수 있게 흘려보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지워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미 새겨진 흔적은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다는 것은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그저 지금을 살아가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몸이 살고 있는 지금으로 멀어진 마음이 돌아올 수 있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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