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감각에 머물기
무엇을 해도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을 때는, 일단 뛰어보자!라고 마음을 먹는다.
그러고는 오로지 밖으로 나가는 데에만 집중을 한다.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것부터가 쉽지가 않다. 이상하게 갑자기 몸은 무거워지는 것 같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더 거세지고, 저기 깊숙이 들어가 있는 장갑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이어폰도 챙겨야 하고 작은 손수건도 하나 챙겨야 하고 혹시나 챙기지 못한 것은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동안 시간은 점점 흘러간다. 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뛰지 않을 핑곗거리는 무한정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일단 밖으로 나가기만 한다면 성공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막상 뛰기 시작하면 또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아 힘들어 내가 왜 나왔을까-하는 후회 같은 것들이랄까. 뒤이어 당장 해야 할 것들도 떠오르기 시작한다. 급하게 나온다고 대충 벗어놓은 빨래더미들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들이 휘몰아치고 나면 그제야 내가 아직도 뛰고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 순간 머릿속에 꽉 차 있던 생각의 안개들이 하나둘씩 걷어져 가고, 오로지 내가 뛰고 있는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심장이 터져버릴 듯이 금세 숨이 차오르던 순간은 지나가고, 어느새 높아져 있는 심박수조차 안정적이게 느껴진다. 지금의 속도, 리듬, 이 호흡에만 집중하게 되는 순간.
가빴던 숨은 다시 제자리를 찾고, 앞뒤로 열심히 흔들던 팔과 다리는 제 리듬대로 여전히 오간다. 내가 지금 숨이 차고 땀이 흐르게 뛰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했던 목표치를 채우고 나면 또다시 고민하게 된다. 조금만 더 뛰어볼까?
달리기는 내 안에 고여있는 것들을 흘려보내는 행위이다. 달려보면 지금의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가 복잡한 건 아닌지, 긴장과 스트레스로 몸이 굳어 있지는 않은지, 숨을 참고 있거나 혹은 너무 짧게 쉬고 있지는 않은지, 그저 지친 건지, 아니면 화가 난 건지, 나의 몸의 상태와 마음의 생각들이 조금은 뚜렷하게 보이게 된다.
나는 상황에 따라 거리와 속도를 조절하며 뛰고는 하는데, 가볍게 몸을 풀고 싶을 때는 천천히 짧게 뛰기도 하고, 조금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얻고 싶을 때는 최대한 빠르게 뛰어보면서 심박수를 높여보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항상 뛰는 거리보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보려고 하는데, 나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임을 달리하는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이기도 하다.
나의 몸의 감각과 감정의 흐름은 어떠한지, 몸과 마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때로는 몸을 움직이다 보면 마음이 더 명확해지기도 한다.
아직도 나의 감정에 대한 주도권이 나에게 없다고 느껴질 때면 그냥 무작정 뛰러 나가고는 한다.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유연하게 헤엄칠 수 있게. 몸의 움직임 속에서 마음이 다시 잔잔하게 자리 잡을 수 있게 말이다. 그것이 내가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