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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Aug 24. 2017

택시운전사- 폭력에 대한 단상

부서지면서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증명한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했습니다. 이 영화는 비극적인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기에, 사실 망설여지는 것도 

있었습니다만, 눈을 돌릴 순 없었습니다. 부서지고 깨어지면서도 존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요. 그건 죄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죄와 벌, 우리는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죄짓는 현장을 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복경찰도, 샛길을 막아선 채

검문하는 군인들도, 발포를 명령한 책임자도 모두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날의 광주, 오월의 햇볕이 비춰야 했던 그곳엔 피가 낭자합니다. 거리 곳곳에, 좌판을 내린 가게와 상점들,

텅 비어버린 도시가 되어버린 광주엔 붉은 피가 갈색으로 눌러붙어 있었습니다.


그 도시로 향하는 택시운전사 만섭, 뒷좌석엔 위르겐 힌츠페터가 타고 있습니다.

푸른 눈의 목격자, 라는 별명을 가지게 될 이 사내는, 외신기자로서 광주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러 광주로 

가자고 합니다. 

Let's go, Gwangu.

                                                                                 

만섭에게 있어 광주로 가자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처음, 만섭은 단순히 광주로 가자는 뜻으로 알아듣습니다.

그가 태운 손님의 목적지가 광주라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방심한채로 그는 광주로 내달립니다.

하지만 그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푸른 눈의 독일인 기자가 광주에 태워주는 조건으로 10만원을 준다는 것, 단지 그것 뿐입니다.


하지만 만섭은 곧 목도하게 됩니다. 피를 흘린 채 응급실로 실려가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 트럭을 빌린 채 

"우리는 정의파다."외치며 다함께 노래를 부르던 대학생들, 단순히 대학가요제에 참가하기 위해 대학생이 되었다는 '재섭'. 만섭이 마주한 그들은 순박하고, 안전과 소박한 꿈 외에는 별다른 욕심도 부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도심 한가운데 총성이 울려 퍼집니다. 탱크가 밀어닥치고, 그 위에 올라탄 군인들이 사람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격을 퍼붇습니다. 먼지를 쓸어내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게 마치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그제야 택시비 10만원의 의미를 깨달은 만섭은, 집에 홀로 남겨진 딸과 자기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는 

서울로 다시 돌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힌츠페터를 태우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가 받은 10만원은, 힌츠페터와 그가 촬영한 참사현장의 필름을 무사히 서울로 운반하느 것이기에, 만섭은 

망설입니다. 



그 순간, 영화는 절묘하게도 만섭의 고물 택시가 고장나 수리를 맡겨야하는 전개로 만섭을 광주에 붙들어 놓습니다. 이제 만섭은 좋건 싫건, 광주에 발이 묶인 채 광주시민들과 운명을 함께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립니다.

운명공동체, 원래대로라면 서울의 거리에서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로 향해야 할 만섭은 그렇게 광주와 하나의 

운명이 됩니다. 이제는 만섭 자신또한 안전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가 태운 손님이 외신기자 힌츠페터임이 알려진다면? 만섭은 남겨진 딸을 위해서라도, 또한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한 피흘리며 죽어가던 광주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페터를 서울까지 책임지고 데려다주어야 합니다.


물론, 영화는 처음부터 소시민이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처음엔 광주에 대한 책임감도 없고, 목숨걸고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향해, 

"비싼 돈 들여서 대학보내놨더니 뭐하는 짓이냐, 저게."

하고 손가락질할만큼 광주에 무관심했던 그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섭을 부끄럽게 만드는 건, 타지사람인 자신에게 밥상과 침실을 내어주고, 차에 기름 한 방울이라도 더 넣어주고, 수리를 도맡아주는 살뜰한 광주사람들의 인심과 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선량한 광주사람들을 향해 밤이 되면 어김없이 총성이 울려퍼집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부당함을 겪고 있다는 모순, 이 부조리함, 그리고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분노, 그들과 공유하는 슬픔이 만섭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갖게 하고, 마침내 그는 도중에 서울로 돌아가려는 차를 돌려 광주로 향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결정적 계기는 만섭과 페터를 도와주려다 사복경찰의 손에 죽임을 당한 대학생 '재식'이었죠.

독재타도를 외치던 광주의 학생들이 '폭도'로 몰리고, 북한에서 사주를 받고 내려온 북괴가 되는 현실, 사복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던 만섭과 페터를 돕기 위해 희생할 정도로 선하고 꿈많던 청년 재식은 군홧발에 짓밟혀 죽고 맙니다. 논두렁에서 발견되었다는 그의 시신, 대학가요제에 나가 우승하겠다던 그의 꿈도 같이 침잠해버린 이 현실 앞에서 만섭은 물론, 관람객들도 함께 공분하고 애통하게 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사정은 여의치 않습니다. 영화에선 앵글에 담지 못했지만, 국가내란죄로 끌려가 고문을 받다 불구가 되어 돌아오거나, 풀려난 이후에도 폭행의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

광주시민들은 그날, 영혼과 몸이 잘못 던져진 유리알처럼 부서지고 깨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들이 목격한 거리의 학살은 그들의 기억속에 폭력의 원체험으로 남아 그들의 의식과 기억을 괴롭힙니다.


이에 대해 서술한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러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부서지면서 영혼이 존재했단 걸 증명한 사람들,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그들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진 채 그 모진 시간들을 견뎌야 했을까요.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해야 했던 사람들, 그들에 대해 서술하며 작가

한강은 말합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피폭의 경험은 눈처럼 쌓이고 쌓여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치유받지 못한 채

침잠해있던 그날의 기억들이, 상처들이 모여 영화 '택시운전사'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들의 눈물과 상처로 얼룩진 영화 '택시운전사',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의 피로 이루어진 평온을 누리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 모든 게 끝난 걸까요? 

영화에서 만섭은 결국 페터를 무사히 서울로 보내는 데 성공하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일상을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섭의 진짜 이름도, 생사여부도 모릅니다. 모른 채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만섭은 우리 주위에 있을 것이며, 이는 광주역시 마찬기지일 것입니다.


5월 18일부터 5월 27일에 이르기까지 열흘의 시간동안, 광주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광주도 만섭도, 황씨도, 대학가요제를 꿈꾸며 해맑게 웃던 재식까지도 우리들 곁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택시운전사'를, 그리고 광주와 남겨진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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