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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녜은 Apr 16. 2019

광화문광장의 기억과 빛 속으로

충정로하루살이의 점심산책 5

다섯 번째 산책

#세월호5주기 #광화문세월호추모공간 #기억과빛


남들보다 조금 긴- 점심시간 200% 활용기

다소 불친절한 나만의 기록

충정로 - 광화문   버스 5분. 도보 20분


#1

기억記憶.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내는 것. 행복하고 좋은 기억은 영원히 간직하거나 다시 꺼내어 보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힘들고 아픈 기억은 멀리하고 싶어진다. '간직'이 아니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당연스럽게 생겨난다. 나 또한, 그랬다.    

벚꽃이 만개하고 금방 져버리는 이쁘고도 가혹한 4월이다 / 전녜은


#2

오늘은 4월 16일, 벌써 5번째 봄이다. 다섯해가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성장했다. 사건이 벌어지고 분향소가 곳곳에 생겨났을때, 나는 분향을 하지 못했다. 그곳에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가슴이 미친듯이 뛸 게 뻔했다. 그래서 가지 못했다. 용기내지 못했다.

독립운동가들과 기억과 빛 이라는 새로운 세월호 추모공간 / 전녜은


#3

탄핵으로 온 나라가 들썩 거릴때 나는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해보았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으로 향했고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 순간에 함께 분노하며 슬퍼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리고 작년 4월 16일, 나는 4년만에 광화문광장 분향소에 갔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일이었다.

기억과 빛 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온 추모공간에는 해외 취재진들도 다녀갔다 / 전녜은


#4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했던 광화문 세월호 천막이 떠난 자리에는 ‘기억과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광화문광장에 있던 세월호 천막은 아프고 힘든 기억을 잊으려고만 하는 우리들의 습성?에 큰 각성제로 작용했다. 누군가가 그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롯이 세월호를 기억해주는 것이라고.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누군가는 노란색 꽃을 준비했더군 / 전녜은


#5

슬픔은 끝없이 나누어야한다고. 아픈 기억일수록 많은 사람과 함께 해야한다. 영화 <생일>에 등장하는 순남(전도연 분)은 그 슬픔이 너무나 커서 사람들과의 소통을 철저히 차단하며 채 시간을 보내고있었다. 하지만 순남의 옆집에 사는 우진엄마(김수진 분)는 그녀의 그러한 모습까지도 모두 끌어앉고 함께 슬퍼해준다. 함께 울어준다. 진정한 위로법이었다.

기억, 오늘에 내일을 묻다 / 전녜은

영화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순남의 아들 '수호'의 생일에 함께 모여 수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울고 웃는다. 슬픔을 함께 나누는 법을 보여준다. 그 슬픔에는 끝이 없겠지만, 그 끝엔 여전히 우리는 기억하고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오늘도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

미안하다는 것, 잊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2019년 4월 16일 이해인 수녀(시인)

경향신문 수녀의 詩 편지 <그 슬픔이 하도 커서>



추신

일어나자마자 듣게 된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의 화재소식은 또 한번 내 가슴을 철컹 내려앉게 만들었다.더 이상 4월 16일에 아픈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2017년 6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동쪽 앱스부분과 첨탑 / 전녜은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토머스 스턴스 앨리엇, <황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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