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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녜은 Apr 24. 2019

사라진 서울의 전찻길, 서대문-충정로

충정로 하루살이의 점심산책 6

여섯번 째 산책

#서대문 #돈의문 #전차


남들보다 조금 긴-점심시간 200% 활용기

다소 불친절한 나만의 기록

충정로-서대문 도보 왕복 30분



1

서대문 전차


1899년, 서울에 돈의문(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왕복하는 전차가 개통되었다. 1901년에는 돈의문에서 마포까지 전차선이 연장되었다. 돈의문에서 마포까지 가려면 '충정로'를 거쳐야한다.

1900년대 전후 돈의문의 모습. 돈의문 사이로 철로가 깔려있고 그 위로 전차가 다녔다. ⓒ서울역사박물관

여섯 번째 걸음 기록은 충정로에서 서대문, 서대문에서 충정로를 왕복하는 코스이다. 전차노선도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충정로는 '서대문'과 '아현동'사이에 위치한다. 사라진 전찻길을 상상하며 걸어보았다

1930년대의 전차영업노선도 ⓒ서울역사박물관

2

서대문사거리


내가 이화를 다닐 땐 서대문사거리에 서대문고가가 있었다. 2015년 9월, 개통 44년만에 서대문고가도로는 완벽히 철거되었다. 아현고가, 홍제고가에 이어 서대문고가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대문고가도로가 있던 서대문사거리(왼쪽) ⓒ뉴스1, 왕복8차선으로 새롭게 재정비된 서대문사거리 ⓒ뉴시스

서대문 고가도로가 철거되면서 버스 중앙차선이 만들어졌다. 나의 출근길을 책임지는 버스중앙차선이기도하다. 미동초등학교 앞에 놓인 육교에 올라가면 서대문사거리와 마포방향의 충정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서대문 사거리 방향(왼쪽), 마포방향의 충정로 모습 ⓒ전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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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역


서대문역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일로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지하철역이다. 서대문사거리에 위에, 서대문구, 종로, 중구의 경계에 위치해있다.

점심시간의 서대문사거리는 직장인들로 붐빈다  ⓒ전녜은
서대문사거리는 말 그대로 사.거.리이다. 각기 다른 네 방향으로 모두 움직일 수 있다. 서대문사거리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전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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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성부대관 大京城府大觀


1936년 8월 조선신문사는 대형 조감도 '대경성부대관大京城府大觀 을 발행했다. 이 지도는 일본인 오노 가즈마사이 제작하였다. 경성(서울), 인천, 월미도까지 포함된 한 장의 조감도로 마치 구글 항공뷰를 보는 듯 하다.

대경성도시대관의 부분(1936년). 서대문사거리를 중심으로 서대문우편국, 서대문경찰서, 적십자병원, 죽첨장이 놓여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전녜은
서대문우체국
 - 1901년 한성 우체사 경교지사로 업무 개시
현재 서대문우체국청사는 '창천동'청사로 개축 이전하였다. 위 건물은 충정로 우체국으로 사용중이다. ⓒ전녜은
서울 적십자병원
 - 1905년 대한적십자사가 창설됨과 동시에 적십자병원도 창립
1923년 당시 적십자병원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에게 저렴한 치료비를 지원하고 극빈자들에게는 무료 진료를 하였다. ⓒ전녜은
4.19 혁명 기념 도서관
- 1964년  4.19이념과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계승 발전시키고자 설립된 도서관
4.19 혁명 도서관의 대출권수 1인 3권, 대출기간은 2주(14일)이다. 고등학생때 열람실을 꽤 애용했었다.ⓒ전녜은
농업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서대문역사거리 버스 정류장에 앉으면 정면으로 보이는 서대문 수퍼마켙. 간판의 '수퍼마켙'부터 펩시와 칠성 로고에 옛스러움이 그대로 묻어있다. ⓒ전녜은
죽첨장에서 경교장으로
- 1938년 일제의 금채굴장려정책으로 금광재벌이 된 최창학이 세운 2층 서양식 건물

죽첨장은 그 당시 가로명 죽첨정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은 주로 외빈 접대용으로 사용되었다.

적십자병원으로 지나서 조금만 더 걸으면 강북삼성병원 건물이 나타난다. 병원 건물 사이로 '경교장'이 보인다. ⓒ전녜은

해방 이후 최창학은 친일 이력을 없애기 위해 김구에게 집을 무상으로 내주었고 김구 '경교장'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이 건물은 1949년 김구 서거직전까지 임시정부 청사와 거처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복원 후 전시공간이 되었다.

이 버스안내음성을 들어본 적있는가 "다음역은 '경교장'입니다." 큰 길가에서는 이 건물이 절대 보이지 않는다. 강북삼성병원 안에 경교장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녜은

5

돈의문터


돈의문敦義門은 한양도성의 서(쪽)대문이다. 의로움義돈독히敦 한다는 뜻이다. 1396년(태조 5년) 한양도성이 마무리되면서 사대문이 만들어졌는데, 이때 돈의문이 처음 설치되었다. 이후 몇 차례 위치를 옮겨 새로 설치하다가 1422년(세종4년) 현재 정동사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돈의문 옛 모습과 전차 ⓒ서울역사박물관

북문 숙정문은 풍수상의 이유로 개방하지 않았기에  돈의문이 사람과 물자의 통로가 되었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철도 서대문정거장이 생겨났고 이로 인하여 돈의문 주변의 교통량이 폭증했다. 1915년 일제는 돈의문을 철거해버렸다.

서울 4대문 중 유일하게 해체된 서대문. 서대문이 없는 서대문이다. ⓒ전녜은
2007년 돈의문터에 안규철작가는 <보이지 않는 문> 이라는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전녜은
돈의문 터 위에서 바라본 서대문사거리 방향의 모습 ⓒ전녜은
돈의문 터 위에서 바라본 경향신문 건물과 정동길 초입. 사계절이 아름다운 정동길은 나의 학교가는길이기도 했다. ⓒ전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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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박물관마을

매주 화요일~일요일 오전10시~오후7시 / 무료


1422년 현재 정동 사거리에 새롭게 돈의문이 조성되면서 '새문新門'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돈의문 안쪽 동네는 새문안골, 새문안 동네로 불렸다.

돈의문 터 뒤로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자리잡고있다.  ⓒ전녜은

1960-70년대까지 새문안동네에는 서울고, 경기고, 경기여고 등 명문학교가 위치하고 있었다. 1970년대 이후 다수의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옮겨가고 강북삼성병원 신관과 같은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많아졌다.

1970년대  명문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하고 같은 시기 교육청이 새문안동네 뒤편으로 이전해왔다. ⓒ전녜은
강북삼성병원과 돈의문박물관 마을 뒤쪽으로는 재개발이 진행되어 번듯한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이 방향으로 계속 걸으면 홍난파가옥과 한양도성 인왕산구역이 나타난다. ⓒ전녜은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이웃한 종로구 교남동 일대와 더불어 2003년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기존 건물을 전면 철거하여 근린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었지만 서울시는 2015년 마을의 원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위에서 바라본 돈의문 박물관 마을 ⓒ서울시
돈의문박물관마을의 입구는 여러개이다. 위 사진은 강북삼성병원 반대편에 위치한 입구의 모습이다. 저 멀리 남산타워도 보일만큼 맑은 모처럼 맑은 날씨였다. ⓒ전녜은
돈의문전시관 아지오 Agio
-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운영되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Agio새문안 동네의 명소 중 한 곳이었다. 앤티크인테리어 전문가 부부가 만들어 운영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이곳은 현재 돈의문 전시관으로 사용되고있다.

조선시대 돈의문 안의 첫 동네였던 새문안 동네.  그곳에 위치한 아지오는 조선의 시간을 담은 경희궁과 마주 보고있다. ⓒ전녜은
아지오의 건물 2층은 공간의 건축질서를 그대로 남겨놓았는데, 곳곳에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전녜은
구가도시건축은 골목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재개발 전 홍파동과 교남동의 모습을 담은 모형으로 복원했다.ⓒ전녜은
6080 감성공간
- 서대문 사진관, 새문안극장, 삼거리 이용원
당시 영화관을 재현한 새문안극장에서는'맨발의청춘’ 같은 추억의 영화를 매일 상영한다.ⓒ전녜은
1960-80년대 사진관과 이용원의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서대문사진관에서는 검정치마 앨범자켓과 같은 결혼식장 세트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전녜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 3.1운동 100주년 기념
- 독립운동가의 집,  특별기획 드라마 '이몽'의 소품전시 등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 3.1운동 100주년 기념 관련 전시들이 진행중이다. ⓒ전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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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역사박물관 앞 381호 전차


한국전쟁발발로 전차 궤도가 파괴되고 승객도 감소한다. 도심에 세종로 지하도 공사가 진행되면서 서대문-종로 네거리, 남대문-효자동 전차의 운행은 중지되었다. 1968년 모든 전차는 운행을 멈추었다.

서대문 381호 전차 ⓒ전녜은 / 70년간 시민의 발이 되어준 전차가 멈췄다는 기사 ⓒ1968년 11월 30일 동아일보                                  


한길 위에 사람들은 바쁘게 또 일 있게 오고 갔다. 구보는 포도 위에 서서, 문득 자기도 창작을 위하여 어디, 예(例)하면 서소문정 방면이라도 답사할까 생각한다. '모데르놀리'를 게을리 하기 이미 오래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中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 구보씨는 전차를 타고 경성을 배회한다. 위 글귀에 등장하는 '서소문정'은 현재 경찰청일대를 일컫는다. 나도 구보씨처럼 경성 한복판을 '점심산책'이라는 명목으로 배회하였다. 서소문정 방면으로 다시 걸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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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어 돌아온 충정로


1920년 조선은 일본에게 식민지 경제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일제는 조선에 특수은행, 즉 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을 세워 조선총독부에 필요한 자금을 뒷받침하도록 하였다.

조선식산은행 경성본점과 전차, 1928,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왼쪽), 일제강점기 당시 서대문~마포 간 전차노선도 (1) 서대문역 (3) 경성대화숙 터 ⓒ황두진

식산은행은 현재 롯데호텔에 위치하고 있어 충정로까지는 전차로 한 번만 갈아타면 되었다. 그래서인지 충정로일대에는 식산은행과 관련된 장소가 많다.

현 미동아파트(1969년 건축)은 식산은행의 독신자아파트였던 경성대화숙 터이다. 또 1940년 야마토아파트로 불리기도 하였다. ⓒ전예은

현재 미동아파트1969년에 지어졌고, 그 자리에 1940년에 지어진 또 다른 아파트가 존재했다. 이는 경성대화숙이다. 경성대화숙식산은행의 독신자 아파트였다. 전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지 않았겠는가


9

충정각


미동아파트에서 충정로를 건너 마포 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식산은행과 관련된 건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충정각이다. 1902년 한성전기회사의 미국인 기사장 R.A 매클켈런이 지은 집이다.

ⓒ전녜은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미국이 전기 관련 이권을 따내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 한성 전기회사가 운영되었다. 조선에는 전기공이 없었고 미국의 전기공들은 고임금을 받고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향이 그리웠던 이들이 전형적인 미국 캘리포니아 건축양식으로 지은 집이다.

뾰족한 9각형의 첨탑과 베란다, 돌로 된 벽난로 등의 디테일은 당시 유행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양식 건축이라고 한다. ⓒ전녜은

이후 1930년 초 다카마쓰 류키치 일본인이 이 집을 소유하게 된다. 다카마쓰 류키치식산은행 비서과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현재대안공간이자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사용 중이다.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작품전시하기도 하며 여러 매체의 인터뷰 장소로 인기가 좋다.

9각지붕 아래 공간에 놓여있는 빨간 조명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전녜은


글. 사진 전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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