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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녜은 Jun 19. 2019

구한 말 핫플레이스, 정동

충정로 하루살이의 점심산책 7 

일곱번 째 산책

#정동 #고종의길 #덕수궁돌담길


남들보다 조금 긴-점심시간 200% 활용기

다소 불친절한 나만의 기록

충정로-정동   도보 왕복 30분



코리안 스케치 Korean Skeches


제임스 게일(1863~1937)는 캐나다 선교사로 1888년에 조선에 왔다. 그는 서울에만 머무르지 않고 틈만 나면 부산, 개성, 평양 등 구석구석을 돌아 다녔다. 조선에 입국한지 10년만에 1898년 미국에서 <코리안 스케치>라는 제목으로 책을 발간했다.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1898년에 출간한 책 '코리안 스케치'(왼쪽), 게일 선교사가족과 최초의 목사 길선주 ⓒMargaret and Don Farrow

돈의문 인근의 정동


당시 개항장인 인천에서 도성으로 오는 길은 육로로 한강에 이른 뒤 양화진을 거쳐 돈의문으로 들어오는 길이 가장 빨랐다. 1882년부터 서양 각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이후, 미국과 유럽인들도 거의 이 길을 택하였다.

구한말 조선의 공사관 거리 풍경. 각국 공사관은 돈의문 인근 정동에 자리를 잡았다. 덕수궁의 석조전의 모습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정동 일대로 추정할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1883년 미국 공사관을 필두로 각국 공사관이 돈의문 인근 정동에 자리 잡게 된다. 이는 경운궁(현 덕수궁)과의 인접성뿐만 아니라 이 같은 교통 사정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 일대는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서양 외교의 중심지역이었다. 

구한말 정동일대에서 전차를 타는 서양 외국인들의 모습.  정동은 서양 외교의 중심지역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서울 Seoul'이라는 설명문만 붙은 아래 사진은 코리안 스케치의 서문에 실려있다. 아직 경운궁(현 덕수궁)이 재건되기 전정동일대의 모습이다. 서양인들의 주거지로 한창 변모가 시작된 후의 모습으로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남산 자락이며 미국, 영국공사관이 자리한 언덕이 가까이 보인다. 

제임스 게일(James S. Gale)의 코리안 스케치(Korean Sketches), 1898, Fleming H. Revell Company.

정동사거리


정동사거리는 정동과 광화문, 강북삼성병원, 서대문역 네 방향의 교차로다. 정동사거리에는 맥도날드가 자리잡고 있었다. 신촌 맥도날드도 없어진 마당에 정동사거리 맥도날드는 일찍 감히 사라졌다. 야간자율시간에 먹었던 맥플러리가 생각나는 거리다.  

돈의문터에서 바라본 정동길 입구의 경향신문사 건물 ⓒ전녜은
정동사거리에 놓여진 서울자전거 따릉이. 이 길을 직장인의 신분으로 다시 점심마다 걷게되다니. ⓒ전녜은

공사관 구역(Legation Quarter)


정동구한 말 외교의 중심지였다. 1883년 미국공사관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러시아등 외국 공관들이 차례로 들어섰다. 이는 열강들 사이의 외교 정보를 수집하고 조선 정보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이곳 정동으로 모여든 것이다.

정동길은 노오란 은행잎으로 가득차는 가을이 가장 멋있다. 하지만 초여름의 생기넘치는 녹색물결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전녜은
캐나다 대사관 
: 서울시 중구 정동 16-1 

캐나다와 한국의 관계는 1888년 토론토 출신의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 (James Scarth Gale)이 한국에 파송되며 시작되었다. 게일 선교사는 한-영 사전을 최초로 출간하고, 최초로 영어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정동길에서 가장 마주하는 대사관은 캐나다이다. ⓒ전녜은

캐나다한국전쟁에 참가한 전통적인 우방으로 1963년 한국과 단독으로 외교관계를 맺었다. 10년 후 1973년 처음으로 한국에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캐나다 대사관 앞 서울 정동 회화나무. 수령 500년이 넘는 서울시에서 지정한 보호수이다. ⓒ전녜은
프랑스 공사관 터 (현 창덕여자중학교)
: 서울시 중구 정동 28

정동 28번지에는 프랑스대사관이 있었다. 1836년 최초의 프랑스 선교사인 피에르 모방이 한국에 도착하였다. 현 관수동 126번지에 있던 프랑스 대사관은 1889년에 정동지역으로 터를 옮겼다.

각국 공사관을 통틀어 가장 뻬어난 외관을 자랑했던 옛 프랑스공사관. 서울 성벽과 그 위로 올라앉은 프랑스 공사관의 풍경 ⓒ한국콘텐츠진흥원

옛 프랑스 공사관 1895년 프랑스 건축가 쌀르벨르바로크풍으로 설계하였다.지하 1층, 지상 2층의 본체와 5층 옥탑으로 이뤄진 적벽돌 건물이었다. 

창덕여자중학교는 생각보다 높은 언덕길 위에 세워져있다. ⓒ전녜은

1910년 한일병합 뒤 총독부로 소유권이 넘어갔고, 1935년 서대문고등소학교 확장에 따라 헐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창덕여중이 정동으로 이전됐다. 최근 2010년 신축터 교내 운동장에서 옛 프랑스 공사관 터의 지하실 유구와 도심 서울 성곽의 기단부를 발견하였다.

  서울 창덕여중 신축 터에서 발견된 구한말 프랑스공사관 터. (왼쪽) 서울성곽 기단부 유적. ⓒ한겨례 노형석 기자
미국 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
: 서울시 중구 정동 10

1882년 미국과 한국 양국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이는 한국이 서방 국가와 맺은 첫 번째 외교 관계이기도 하다. 1883년 미국은 루셔스 하우드를 최초로 한국에 파견하였다.

1974년 지어진 새로운 미국의 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 ⓒ전녜은, 1929년에 찍힌 미국 대사관 앞길 ⓒ한국 콘텐츠진흥원

1972년 옛 대사관저가 붕괴 위험에 직면하자 미국 정부는 역대 미국 대사들의 100년 동안의 숙원이던 '서양식 건물'을 새로 지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1971년 주한 미국 대사로 부임한 필립 하비브는 '한옥 양식'을 고집했다. 

미국 하비브하우스의 성조기. ⓒ전녜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후, 미국 해병들이 관저에 성조기를 계양하고 있다. ⓒ미국 국립공문서보관소
미국 하비브하우스는 광화문 방향의 덕수궁돌담길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전녜은


다시 이어진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돌담길은 총 1100m이다. 영국대사관으로 인해 170m 구간이 가로 막혔었다. 서울시와 영국 대사관의 협상 끝에 2017년 8월 100m 구간이 개방되었고 2018년 12월 나머지 70m가 시민에게 열렸다. 

고종의 길을 걷기 전에 덕수궁돌담길을 한바퀴 돌아보자. 오른쪽방향으로 걸으면 영국대사관이 나온다. ⓒ전녜은
60년간 막혀있던 100m구간. 영국대사관 후문~대사관 직원 숙소 앞까지의 보행길. 많은 시민들이 점심산책을 즐기고 있다. ⓒ전녜은

폭이 좁은 이 길은 덕수궁에서 러시아공사관, 경희궁으로 가기 위한 주요한 길목이기도 했다.

영국대사관의 후문. 영국 왕실의 문장이 박힌 높은 문을 뒤로 하고 작년 12월에 개방된 70m구간을 걸어보았다. ⓒ전녜은
덕수궁 돌담길은 덕수궁 내부로 연결된다. 비밀통로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 속 산책이 가능하다니. ⓒ전녜은
덕수궁 경내길에서 정관헌이 보인다. 정관헌은 고종이 커피를 마시고 연회를 즐겼던 공간이자 외교사절단을 맞이하던 곳이다. ⓒ전녜은
이 문을 통과하면 덕수궁 돌담길이 끝난다. 돌담길 바로 옆에는 영국대사관이 위치하고 있다. ⓒ전녜은
영국대사관 
: 서울시 중구 정동 04

1883년 한국과 영국은 조영수호통상조약을 맺는다. 1884년 영국 총영사관을 설치한다. 미국공사관에 이어 두 번째로 정동에 터전을 잡게 된다. 

덕수궁 경내길을 따라 나오면 한글로 적힌 영국대사관 문패가 보인다. ⓒ전녜은

영국대사관옛 정릉(貞陵)이 있었던 터로 알려져있다. 영국의 외교공관은 오롯이 한 장소에만 머물렀다는 점에서 의미를 크게 가진다. 

한국의 기와지붕이 얹어진 문이라니. 아주 멋스럽다. ⓒ전녜은


고종의 길

미국 주간지 1897년 7월 24일자에 수록된 러시아공사관의 모습. 러시아공사관으로 가는 이 좁은 길은 '고종의 길' 옛 모습으로 추정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고종의 길1886년 경운궁(현 덕수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고종이 피신했던 아관파천의 통로이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진다.

높은 담벼락 앞에 놓인 고종의 길 표지판 ⓒ전녜은
비밀통로처럼 생긴 고종의 길 입구. 저 작은 문을 넘어가며 고종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전녜은

2011년 미국과 토지교환을 통해 해당 영역이 우리나라 소유가 되었다. 2016년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 시작된 복원사업에 의해 이 길이 완성되었다. 

좁은 문 지나면 담벽이 이어진다. ⓒ전녜은
높지 않은 담벽으로 이어진 이 짧은 길을 걸으면 구한말의 아픈 역사가 떠오른다. ⓒ전녜은
옛 선원전 자리에는 일본 건물로 사용되었던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이 세워져있다. 이 건물은 선원전 복원을 위해 곧 철거될 예정이다. ⓒ전녜은
저 문을 나서면 정동공원과 러시아공사관 터가 나타난다. 처음엔 신기했고 두번째에는 내가 마치 고종이 된 듯 조심스러웠다. ⓒ전녜은
구 러시아공사관  
: 서울시 중구 정동 15–1

1884년 조선과 러시아는 러시아에서 파견한 칼 위메르에 의해 조로수호조약이 체결되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게 살해되었고 고종은 이듬해 2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 

경운궁(덕수궁)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위에 지어진 러시아 공사관. 다른 열강과 대한제국을 제압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이 아니었을까.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러시아는 정동에 공사관을 세웠다. 러시아 공사관은 경운궁을 비롯한 도성 안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지녔다. 이를 이용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주변공사관들을 견제하고자했다.

옛 공사관 건물의 일부인 3층짜리 전망탑만 간신히 남아있다. ⓒ전녜은

1885년 세워진 러시아 공사관건축가 사바틴에 의해 설계되었다. 벽돌로 된 2층 구조로 한쪽으로 탑을 세웠다. 입구에는 개선문 형식의 아치문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채는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

1973년 탑 부분만 복원한 것이 지금 우리 앞에 남아있는 모습이다. ⓒ전녜은
반원형 아치창 그리고 박공 페디먼트(pediment). ⓒ전녜은
석재와 회색 별돌로 이루어져 있던 탑은 복원과정에서 지금처럼 흰색 칠로 마감되었다. ⓒ전녜은
러시아공사관을 뒤로 하고 언덕길을 내려가면 정동구락부의 중심이었던 손탁호텔의 터가 나온다. 손탁호텔의 터에는 현재 이화여자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전녜은

정동구락부와 손탁호텔


정동구락부구한말 서울 정동에 있었던 구미인과 조선 개화중심의 사교모임이다. 1894년(고종 31) 사교와 친목 등 비정치적인 성격을 표방하며 설립하였다. 이들은 정동 소재 손탁호텔(사저)에 모여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친러반일 운동의 책략이 세워지던 곳이었다. 

정동 29번지에 있던 손탁호텔의 외관 ⓒ한국콘텐츠진흥원

프랑스 태생의 독일인이었던 앙트와네트 손탁(Antoinette Sontag). 여동생의 남편이 러시아 주한공사인 웨베르였던 관계로 서기 1885년 웨베르 공사에 수종하여 경성으로 왔다. 

손탁호텔의 주인, 독일인 여성 손탁(sontag). ⓒ한국콘텐츠진흥원

미스 손탁러시아공사관에 머물면서 임금의 식사, 세화(돌보아줌) 등을 맡게된다. 미스 손탁에 대한 고종의 사랑이 남달라 왕궁의 조리부터 연회를 맡기기에 이르렀다. 그 후 그녀를 위해 토지를 사들어 가옥을 하사한다.

TvN 미스터션샤인의 글로리호텔은 손탁호텔과 유사하다. 

미스 손탁이 서울 사교계의 프리 마돈나로도 맹활약한다. 그녀는 정동구락부와 왕실과의 연락업무담당하게 된다. 

손탁호텔에서는 호텔식 커피숍을 선보였다고 한다.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TvN 미스터 션샤인

손탁호텔서구식 호텔 영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풍의 실내장식으로 꾸며졌고 서양요리와 호텔식 커피숍을 선보이게 된다. 이곳은 서울의 외국인 전용 호텔로 자리잡게 되었다. 

손탁호텔은 1922년에 철거되었다. 위 표지석은 이화여자고등학교 안에 위치하고 있다. ⓒ전녜은

이화학당


손탁호텔은 1918년 이화학당에 매각되었다. 이를 매수하고 후에 헐어내어 신교사를 건축하였다. 1922년 프라이홀(frey hall)의 신축을 위해 다시 헐려지고 그 이름마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화여자고등학교는 올해 133주년을 맞이하였다. ⓒ전녜은

프라이 홀은 1922년 9월 준공되었고, 1975년 화재로 전소되어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이화여자고등학교 교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되었다. 이 건물 3층에는 학생들의 독서실이 마련되어있다. 절대 출입금지. 재학생만 출입가능. ⓒ전녜은

p.s. 내가 이화를 다녔을때, 우리에게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백주년 기념관 1층 벌레네 집에서 점심을 먹어보는 것이었다. (가게 이름은 Birds&Bugs였는데, 우리는 그곳을 벌레네집이라고 불렀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 직장인들이 너무나 멋있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장인이 되어 그 곳을 다시 찾았을 땐, <La Green>으로 바뀌어 있었다. 벌레네 집보다 훨씬 맛있고 좋지만,, 문득 떠오른다. 그 가게.  

ⓒ전녜은

글.사진 전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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