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하루살이의 점심산책 8
#서소문 #서소문역사박물관 #서소문역사공원
남들보다 조금 긴-점심시간 200% 활용기
다소 불친절한 나만의 기록
충정로-서소문 도보 왕복 30분
한양은 풍수적, 유교적 이념에 따라 계획된 도시이다. 내사산의 능선을 따라 타원형의 성곽을 쌓아올려 안팎의 공간을 구분하였다. 도성의 성곽을 따라 네 개의 큰 대문과 큰 대문 사이에 작은 문 네 개를 설치하였다.
서남쪽에 설치한 문은 소덕문昭德門 또는 소의문昭義門이다. 이 문의 별칭은 서소문西小門이다.
1396년 강화와 인천으로 연결하던 도성문으로 건립되었고 이를 소덕문이라고 했다. 영조 22년(1744년) 문루가 세워지면서 소의문으로 바꿨다. 1914년 일제가 교통문제를 이유로 문 주변의 성벽과 함께 완전히 철거해버렸다.
서소문은 남대문(숭례문)과 서대문(돈의문) 사이ㅡ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한강 포구 중에서 가장 상업이 발달했던 마포로 이어지는 길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서소문은 남대문과 서소문에서 연결되는 한강의 서빙고, 동작진, 노량진, 마포, 광흥창, 양화진 등 삼남의 물류가 움직이는 길목이다. 삼남은 남쪽의 세 도(道), 충청도(忠淸道)•전라도(全羅道)•경상도(慶尙道)를 일컫는다.
1900년에 개통된 경인(경성-인천)철도로 서대문과 서소문 일대를 크게 변화하였다. 이후, 근대적 교통수단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서소문은 교통의 요지를 도맡았었다.
1905년 러일전쟁을 위해 경의선의 노선을 변경하여 용산분기점을 서울역으로 옮겼다. 이로 인하여 도성의 관문이었던 남대문 밖 서울역의 역할이 커지고 서대문역은 일순간 그 역할을 상실했다.
경의선 철로의 변경과 함께 1919년 서대문 기차역이 폐지되었고 변경된 노선에는 서소문역이 새로 신설되었다. 현재는 서소문역은 폐역이 되어 철거되었고 서소문 건널목으로 바뀌었다.
서소문 밖은 위치적으로 도성에 인접하고 한강 포구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일찍이 시장이 형성되었고 남대문 밖 칠패시장, 종로 시전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규모가 꽤나 있었다고 한다.
대한제국시기에 제물포와 한강 하류 등지에서 잡은 각종 어물과 조개 등을 팔기 위해 소의문(서소문) 밖에 어시장이 형성되었다.
해방 이후 서소문 밖 중림동 일대는 수산물도매시장터가 되었다. 1975년 노량진으로 이전할 때까지는 이곳이 서울에서 가장 큰 서울수산시장이었다.
번화했던 어시장은 사라졌지만 중림시장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수산물 도매를 담당했던 경성수산시장 주변에 무허가로 형성된 중림시장은 수산시장의 영향으로 도매 유통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경성수산시장이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이전함으로 인해 규모가 축소되고, 도매 유통보다는 인근 식당과 주민을 상대로 하는 소매 유통으로 성격이 변하였다.
아현, 서대문 고가도로가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서소문 고가도로는 건재하다. 서소문 고가도로는 1966년에 개통되었다. 그 당시 4차선 무장애 고속도로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포공항부터 서대문 로터리를 거치지 않고 시청 앞 광장까지 연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서소문 일대는 교통의 요지로서의 의미는 상실했지만 철도와 고가도로는 여전히 서소문 밖을 가로 지르고 있다.
서소문 밖은 서소문 고가도로가 생겨나고 수산청과시장이 노량진으로 이전하면서 소외가 고착화되었다. 1976년 수산청과시장이 떠난 자리에 서소문 공원이 조성되었다.
서소문 공원은 종로학원 재수생들의 공원으로 이용되면서 일반인들이 찾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서울역 주변의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소문공원에 지하 4층 규모의 지하주차장(1966년)을 건설했고 중구청의 쓰레기 적환장(1998년)으로 사용되었다.
2011년경부터 일반 근린공원으로 묻혀져가던 서소문공원을 역사공원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2019년 6월, 공사 3년 4개월만에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지상은 공원(서소문역사공원), 지하는 추념공간과 전시장으로 탈바꿈된 새로운 공간으로 돌아왔다.
서소문의 역사적 장소성은 서소문 밖 시장과 함께 조선시대 공식 사형집행 터였다는 사실이다. 서소문 밖에 형장이 만들어진 이유는 서소문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통, 경제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한국 최대의 천주교 순교 성지이며 반역 죄인뿐만 아니라 정봉준, 홍경래 같은 의인들과 정약용, 정약종 등을 비롯한 조선 후기 실학 사상가들이 처형당한 곳이다.
서소문역사공원(지상), 서소문역사성지박물관(지하)의 터가 서소문 참형 터와 순교성지였음을 요란스럽지 않고 깊숙하게 안으로 잘 드러낸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이곳은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새로운 사진스팟으로 급부상중이다.
붉은 벽돌건물로 이루어진 이 곳은 지하로 공간을 만들어놓아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된다.
지하 3층에서 지상의 공원까지 뚫려있는 구조의 하늘광장. 땅과 하늘이 소통하는 서소문밖 네거리 순교성지의 공간 개념을 잘 드러내는 장소이다.
상설전시실은 1,2 전시실로 구분된다. 1전시실에서는 조선후기 사상의 흐름 속에서 발화한 시대정신에 관련된 자료들을 보여준다.
제 2전시실에서는 서소문 밖 네거리의 장소성과 역사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p.s. 두달 만에 돌아온 충정로하루살이의 점심산책. 아직까지는 뒷목에 땀이 나더이다. 조금 더 선선해지면 마마스샐러드 들고가서 피크닉 즐겨야지.
글.사진 전녜은
참고문헌
서소문별곡, 서울역사박물관, 2014
http://www.museum.seoul.kr/www/board/NR_boardView.do?bbsCd=1012&seq=20141117174021288&ss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