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이방인의 전시여행법_대전 이응노미술관편
유럽을 여행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많다. 그 중 한 순간은 뮌헨에서의 경험이다. 일요일의 뮌헨 미술관지구의 미술관의 요금은 단 1유로이다.
대학생 배낭여행객에게는 미술관, 박물관의 요금이 버거울 때가 있다. 하루종일 4곳을 들렸는데, 총 4유로. 그토록 착한 가격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니 정말 행복했다. 그 행복을 2018년 12월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2018년의 마지막 전시는 단돈 500원으로 마무리하였는데. 500원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은 바로 대전 이응노미술관이다. 대전에 들릴 일이 있으면, 이곳을 항상 방문한다. 공간 자체로 기분이 좋은 곳이다. 나는 전시공간에 집착하는 타입이라 공간성에 따라 전시의 별점을 매기곤 한다.
이곳은 마치 덴마크 코펜하겐의 루이지애나미술관(Louisiana Museum)을 연상케하는 공간이다. 특히, 자코메티 조각상이 서 있는 그 공간. 난 사실 코펜하겐에 가본적이 없지만 사진으로 그곳을 염탐한다. 이응노미술관에 처음갔을 때 루이지애나가 딱 떠올랐다. 사진 속 그곳과 비슷했다. 두 공간을 비교해보았더니, 내 느낌이 맞더이다. 그런데 이응노미술관의 '이응노'. 낯선 이름이다.
한국에서 동양화가로 활동하다 프랑스로 넘어가 유럽에서 활동한 화가이다. 주로 붓, 먹, 한지의 전통 재료를 사용하여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인간의 형상은 항상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작업하였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군상>이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인간의 형상으로 채운 그림이다. 생동하는 인간, 움직이는 인간, 역사 속의 인간에 관심을 두었던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키워드 하나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도심이 아닌 교외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접근성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가기 위해 많은 여행객들이 길을 나설 정도로 유명하다. 반면 접근성이 좋은 이응노미술관은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중심지에 놓여있다. 넓은 근린공원 부지 위에 세워져 있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공연장, 엑스포 등 문화생활공간이 함께 하고 있어 대전시민들의 쉼터로 자리잡았다.
키워드 둘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디자인과 위치, 환경은 모두 덴마크의 휘게 hygge로부터 시작된다. 휘게 hygge는 덴마크식 아늑함, 편안함을 일컫는 말이다. 추운 가을밤 편안한 가구와 촛불이 있는 방에서 좋은 친구들과 와인 한잔을 기울이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된다. 루이지애나는 이를 잘 반영하여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이응노미술관은 이응노의 문자추상 ‘수壽’를 조형적으로 만들어낸 건축물이다. 그의 70년대 작업은 주로 문자추상이었고 한자의 자모와 획으로 자연풍경과 인간을 주로 담는 작업을 하였다. 단단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수壽> 를 건축적으로 재해석하여 상징화하였다.
키워드 셋
루이지애나 미술관에는 유명한 핫 스팟이 존재한다. 자코메티방이다. 자코메티방에서 바라보는 호수정원(the lake garden)은 단연코 압도적이다. 부드럽고 따스해보이는 수양버들과 자코메티의 차가운 조각상은 아이러니하게 잘 어울린다. 또한, 헨리무어, 알렉산더 칼더 등 유명작가의 조각상들이 놓여져 있는 마당은 꼭 가보고 싶은 스팟이다. 이곳에서 바다를 보며 마시는 커피는 과연 어떤 맛일까.
이응노미술관은 전통건축의 공간요소인 담과 마당의 개념을 재해석하였다. 담을 세워 전시공간과 연계된 외부 공간을 형성시켰다. 넓은 앞마당이 놓여 있어 따스한 봄이나 가을에는 마음껏 뛰어놀기 좋은 공간이다. 물론, 전시장 내부에서 넓은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루이지애나 비할 만큼은 아니였다.
키워드 넷
두 미술관 모두 자연 속에 존재한다. 넓은 유리창을 배치하여 자연 채광이 들어올 수 있게 하였다. 천장을 높게 디자인하여 탁 트인 뷰 포인트를 만들어 냈다. 자연과 함께 있는 두 미술관 모두 내 외부 공간을 ‘산책’이라는 개념으로 연결시켰다. 전시장의 딱딱하고 차가운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고 따스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자연 속에서 산책을 하는 기분을 자아낸다. 루이지애나 미술관를 산책하듯이 한 바퀴 돌면 휘게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하던데. 진심으로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응노 미술관의 새 전시가 곧 시작된다. 이번 전시는 대규모 판화전으로 그의 문자추상 판화를 만나 볼 수 있다. 그는 회화와 유사하게‘문자’와 ‘군상(군무)’을 소재로 작업하였다. 나무판에 거칠고 힘 있게 새겨진 문자들은 추상적이면서도 한국의 ‘인장’을 연상케한다. 그는 새로운 재료와 기법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 나무판 뿐만 아니라 고무, 스트로폼, 돌 등을 사용하며 다양한 질감을 만들어냈다.
코 끝이 시려운 겨울이지만 찬 공기 마시며 산책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응노미술관에서의 겨울산책을 마치고 로비 카페에서 네스프레소 캡슐커피 한잔을 따뜻하게 마셔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