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하면서도 어렵고 묘한 것.
"이상하게 넌 볼수록 정들더라."
중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선배가 뜬금없이 했던 말이다.
'정든다.'라는 말을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에 지금만큼 신경 썼던 나이가 아니었던지라 저 말이 어떤 의미인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에서 유명한 골칫거리인 데다 종종 나를 화장실로 불러내 화풀이를 하던 정말 무서워했던 여선배가 한 말이었으니 더욱 신경 쓰지 않았다.
저 나잇대 여학생들은 단 1살도 하늘과 땅의 차이로 여기다 보니 어제는 친한 동네 언니였다가 오늘은 표정 하나로 꼬투릴 잡힐 수 있고 내일은 복도를 지나가다 가도 이유 없이 욕먹을 수 있는, 선배와는 그런 사이였다.
20대 중반, 학교 생활과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일에, 사람에 이리저리 치이고 마음마저 너덜너덜 지쳤을 때쯤 내 머릿속 어느 부분에 저장 돼 있지만 굳이 들춰내지 않았던 '정든다'는 저 의미가 문득 떠올랐다.
이상하게 볼수록 정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상대는 내가 친해지려 노력했던 대상도 아니었고 본받고 싶은 사람도 아니었으며 좋아했던 이도 아니었는데 왜 나한테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그저 어린 마음에 멋져 보이려 뱉은 말이었을까, 생각 없이 말했던 걸까 머릿속이 한가해질 때마다 곱씹었다.
몇년전, 그리 오래 다니지 않은 회사를 그만두던 날 아무래도 적적한 마음에 친한 회사 후배와 종종 가던 술집에서 소주 한잔 기울이다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2팀 대리님이 그러더라고요. '제이보다 오래 다녔던 애들이 우르르 퇴사한다고 했을 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제이는 진짜 아쉽다'라고요."
옆 팀이라 매일 식사를 같이 했어도 퇴근 후나 주말에 뭐 하냐는 등의 사생활 얘기 조차 하지 않았던 사이였고 회식 때나 같이 술 마셨기에 듣자마자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쳐버렸다.
'이 사람은 또 왜일까'
빤히 바라보던 소주잔을 목구멍으로 넘기다 이유는 모르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든다'의 의미는 서로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다거나 특별한 관계라고 해서 무조건 드는 감정이 아닌 것 같다. 일상 속 별거 아닌 소소한 대화를 하더라도 가식적이지 않고 기대고 싶은 상대에게 은근히 스며드는 그런 감정이 아닐까 싶다.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에게 좋은 느낌으로 내가 떠올려진다는 것이 의아하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좋다. 그러면서도 나를 좋게 생각해 주는 상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떠올리고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