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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당신은

잊힌다는 게 아니에요.

by 이제이 yzeyh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신없던 장례식을 마치고 두어 달 흐른 따사로운 겨울이었다.




방학의 평일 낮에 따스한 햇볕 내리쬐는 거실 한가운데에서 TV장 아래 서랍 속 손톱깎이를 찾는 내가 있다.


왼쪽부터 할까, 오른쪽부터 할까 고민하다 휘릭- 오른 다리에 왼발을 올려놓고선

뒤적뒤적 찾아낸 그것으로 내 온 신경을 왼발톱에 집중하던 때였다.


'딸깍-'


며칠간 자라난 내 과거가 몇 번의 손놀림에 잘려 나갔다.



"... 이게 마지막이네."



몇 발자국 너머의 부엌에서 들려온 멋쩍은 엄마의 목소리였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엄마가 내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시다 문득 내뱉은 한마디였다.

모르는 척하려다, 둘만 있는 낮에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건 나더러 알아차려 달라는 뜻이었으리라.



"뭐가?"



조심조심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고 나는 물끄러미 부엌을, 눈꺼풀을 올려 엄마를,

그리고 엄마가 방금 막 김치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통에 차례로 시선을 두었다.



"총각김치. 너희 할머니 김치. 이게 마지막 통이야."



그렇다.

내가 나고 자라고 당신이 떠난 날까지 먹었던 김치다.

특별한 일이 없지 않은 한 할머니댁에서 옹기종기 모여 담갔던 김장김치인데 그중 내가 즐겨 찾던 할머니 총각김치였다. 아삭아삭한 무가 매우면서도 끝맛은 새콤한 맛이 났던 양념에 그렇게도 잘 어울릴 수가 없었는데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라면의 적당한 반찬이었다.



뭔가 어지러운 엄마의 저 한마디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 말은 곧 내 머릿속이 어지러웠단 뜻이 되겠다.



엄마는 막 끓인 라면과 작게 담은 총각김치를 거실에 있는 내 앞에 차려주셨다. 그 앞에 앉은 느낌이 새롭다 못해 어색했다.

늘 우리 할머니 김치가 최고라며 모든 끼니에 푸짐히 두고 먹었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한 조각 한 조각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이 작은 접시가 그리고 부엌에 놓인 저 빨간 플라스틱의 김치통이 내가 느끼는 얄궂은 경계선이었다.

고작 공장에서 쉴 새 없이 찍어낸 플라스틱 통이 할머니와 나의, 저승과 이승을 계산하는 도구처럼 보였다. 저 안의 김치가 비워지면 당신도 홀연히, 그리고 가뿐히 떠나가실 건가요?



글쎄-

라면과 총각김치를 번갈아 바라보다 뭔가 목구멍이 묵직하게 먹먹해지길래 한 움큼 라면을 집어 입에 밀어 넣었다. 예상한 대로 맵고 뜨거운 것이 내 머릿속만큼 쓰라리게 식도로 넘어갔다.



엄마는 총각김치를 작은 통에 소분해야 한다며 바삐 움직였고 나는 그런 엄마를 모른 척, 내가 느끼는 무언가를 모른 척 끼니를 채우는 데에 몰두했다.

햇살 자작히 드는 평일 대낮에 엄마와 나는, 각자 느끼는 감정을 서로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18살이 된 나의 작은 머리통 안에선 나도 모를 걸쭉한 무언가가 사방으로 울렁거리는 모양새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면에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 김치를 곁들이는데 왜 나는 목이, 가슴이 묵직할까요.



당신과 나 사이의 그 경계선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던 건-

꾸역꾸역 삼켜 버리는 것뿐이었어요.

내가 기억하는 당신의 손길을 그렇게 내 몸 안에 묵직이 밀어 넣었어요.



고로 당신은,

내가 밀어 넣은 그 순간부터 내 몸 안에, 영원히 내 안에 함께 한다고 그렇게 믿어요.



그렇게 믿고 살아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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