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
"앞으로 각자 해! 더 이상 모이지 말자!"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첫제사였다. 시골인 데다 도시와 멀지만 아빠가 장남이기에 우리 집에 우글우글 모여 아직까진 서툰 제사상을 차리고 저녁을 다 비운 직후였다.
"오빠! 무슨 소리야 또 그게?"
앉은뱅이 큰 상을 거실 한가운데 두고 아빠의 맞은편에 앉아 계셨던 큰고모가 말씀하셨다.
드라마나 영화를 봐와서 익숙했다. 떠나간 이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어른들은 늘 한바탕 큰소리를 내질 않나. 방바닥이 뜨겁게 끓던 겨울이었지만 어른들의 공기는 곧 얼어붙어 우수수 날카로운 비가 되어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필 난 직사각형 모양의 큰 상 상석에 앉아 바로 앞에 아빠와 큰고모를 두고 있었다. 입 안에서 굴리던 동태 전을 한 번에 삼키고 눈만 데구루루 굴려 왼쪽의 아빠를 한 번, 오른쪽의 큰고모를 한 번 쳐다보고 이내 고개를 숙인 나는 17살, 12월 차가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말했잖아. 더 이상 뭐 하러 모여. 이제 다들 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제사 내내 아무렇지도 않던 아빠가 대체 왜 갑자기 화가 나신 걸까. 좋은 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쩌렁쩌렁 울릴 만한 날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지 않고 받아치는 큰고모에 듣다 듣다 한소리 더 거드는 작은 엄마에 그 가운데서 조곤조곤 말리는 엄마까지. 당장 불도 내뿜을 기세의 네 자루 따발총이 무한대의 총알을 수도 없이 내뱉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 적 이야기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몰라 누런 장판에 찍힌 무늬만 하나 두 개 헤아리는 와중에,
"제이 앞에서! 엉? 딸 앞에서 아주 잘하는 짓이다!"
환장하겠다. 정말. 여기서 내 이름이 왜 나와?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질 때에도 나이 어린 새우들만 터지는 건가? 어른들 싸움에 왜 애들 이름을 뱉는지 모르겠다. 애들 이름으로 이 싸움이 잦아들어? 아님 더 불 붙이려 하는 건가? 원인도 아닌 내가 괜히 원인이 된 것 같단 생각에 목이 꺾어져라 고개를 팍- 숙이고는 입을 삐쭉였다. 이해할 생각도 안 했지만 대가리만 큰 17살 나는 어른들 싸움이 참 유치하다 생각했다. 혈기왕성한 10대, 20대도 아니고 중년에 접어들면 우아하게 싸울 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학 시험인 데다 평일 제사라 오지 못한 오빠가 문득 보고 싶어졌다. 나랑 같이 어른들 욕을 할 오빠가 참 필요했다.
아- 그냥 다 모르겠고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즈음.
'쾅!!'
밤 운전 할 생각에 피곤하셨는지 저녁 드시곤 작은 방에 불 끄고 잠시 누워 계셨던 작은 아빠가 작은 엄마에게 빨리 나오라고 소리치시곤 현관 밖으로 나가셨다. 작은 엄마는 작은 집 애들을 챙겨 급하게 인사하고 나가셨고 큰고모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 숨을 내뱉고 계셨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아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벌떡 일어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통화하는 아빠의 뒷모습이 간만에 참 미웠다.
"어- 앞으로 안 모이기로 했으니까 너도 그렇게 알고, 잘 살아라."
일이 있어 참석 못한 작은 고모에게 전화하셨나 보다. 몇 마디 안 되는 말로 통화를 끝내시곤 거실 TV다이에 휴대폰을 휙 던지시고는 아빤 안방으로 향하셨고 거듭되는 엄마의 사과와 질려버린 듯한 표정의 큰고모를 모시고 나가시는 큰 고모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엉거주춤 현관 앞에서 인사드리고 뒤돌아 썰렁해진 거실을 시작해 지끈지끈한 이마에 손을 올리곤 베란다로 가 한숨 쉬는 엄마를 끝으로 좀 전까지 총성이 오고 갔던 이 공간에 난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짜증도 나고 머리도 아프고 억울하기도 하고 온갖 복잡한 게 명치 깊은 곳에서 울렁거리는 걸 꾹꾹 누르고 있는데 좀 전까지 아픈 말들을 전달했던 아빠의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생각이었는진 모르겠지만 그냥 난 이 상황을 설명해 줄, 또는 위로를 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아빠 휴대폰을 집어 들어 최근 통화 목록에 찍힌 막내 고모의 번호를 입으로 몇 번 중얼거리곤 겉 옷도 입지 않은 채로 내 휴대폰을 챙겨 집을 나왔다.
아파트 앞 주차장은 비워져 있었고 그곳을 가로질러 내리막을 술술 내려와 아파트 단지 초입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매일 버스를 타는 곳이지만 어수선한 상황을 거쳐 상기된 얼굴로 바라본 밤 11시쯤의 정류장은 소름 끼칠 정도였다. 가로등 불빛 두 개에 한 겨울밤의 바람은 있으면서도 없이 스쳐갔지만 정류장 뒤의 풀숲은 바람이 언제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려주었다.
중얼거리며 외워 온 고모 번호를 내 휴대폰으로 꾹꾹 누르면서 정류장 안 덜거덕 거리는 나무 벤치에 조심히 앉아 차가운 엉덩이로 가는 집중을 휴대폰을 댄 귀로 옮겼다.
"여보세요?"
고모 목소리에 왈칵 울면서 얘기했다.
"고모, 난 아빠가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어요."
긴 통화는 아니었다.
고모도 애써 참는 목소리로 위로를 해 주셨고 mp3가 있으면 이어폰 귀에 꽂고 이불 뒤집어쓰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셨다. 좋아하는 노래 크게 틀어놓고 머리를 비워내라 하셨다. 그리곤 어른들이 이런 모습밖에 보여주질 못해서 미안하다고 덧 붙이셨다. 그냥 너희에게 어른들이 미안하다셨다.
개구쟁이 시커먼 아들만 둘 있는 막내 고모를 어릴 적부터 좋아했었다. 막내 고모는 말 재주도 좋았고 다른 어른들 보다는 우리들 눈높이에서 잘 놀아주셨다.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땐 요즘 애들한테 유행하는 필통이라던가 문구 거리들을 잔뜩 택배로 보내주시곤 했다. 엄청나게 가까이 지내진 않았지만 난 그런 막내 고모가 언니 마냥 좋았다.
그날, 그 버스 정류장에서의 통화가 그녀와의 마지막 통화다.
서럽게 추웠던 버스정류장에서 짧은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 폴더를 덮은 순간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거다. 내가 위로받으려 전화 걸지 않았을 거다.
이별은 언제나 계획적이지 않았고 그날로부터 며칠 뒤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