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존재한다
이상하리만큼 눈알이 데구루루 굴러가는 남자애가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반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데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럴 수가 있나? 싶었지만 곧이어 이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관심 있던 중학교 1학년때에도 우린 같은 반이 아니었지만 오다가다 복도에서 눈 마주치면 인사도 했었다. 넌 키가 또래에 비해 컸고 운동도 잘했지만 공부는 참 안 하는 말썽꾸러기였지. 반면에 나는 그저 공부만 안 하는, 바른 모범생일 뿐이었고.
같은 반은 아니어도 학원은 같이 다녔다. 다른 학교 애들과 같은 반이면서 쉬는 시간이면 그런 듯 아닌 듯 장난도 치곤 했고.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하원할 땐 원장님께서 운행해 주시는 봉고차로 어느 마을을 먼저 데려다줄까-에 너와 더 오래 앉아있을지, 빨리 헤어질지가 정해졌다. 당연히 너 혹은 내가 늦게 내리는 순서일 때 난 마음속으로 많이 설레어했었다. 한마디도 못 건넬 거면서 말이야.
여느 때와 같이 학원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날, 네 옆자리에 앉았던 너의 친구는 네 바로 앞자리에 앉은 내 어깨를 툭툭 쳤지.
"어? 왜?"
"야, 넌 우리 학년 중에 누가 제일 잘 나간다고 생각해?"
참 의미 없으면서도 의미 있는 질문이었다. 그 나잇대 너희들의 관심사는 '누가 짱을 먹느냐'였으니 말이다. 알면서도 참 어이가 없었다. 그런 순서로 인기의 척도를 재고는 했으니까 말이야.
"모르겠는데...? 그래도 너네가 선배들이랑 제일 친하지 않아?"
알면서도 난 에둘러 말했다. 네가, 너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게 내 나름의 첫 튕김이었다. 네 친구에게 전해 들은 너의 첫 속마음이었지만 난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
참 귀엽고도 웃음이 났던 건, 우리가 친해졌을 즈음 둘 다 '그때 나 너 좋아했었어.'라고 대화를 나눴지. 이럴 때에 '사랑은 타이밍이다.'를 말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인연일까 아닐까 고뇌해 보다가도 풋풋하다 못해 생야채의 향기가 날 정도로 어리숙하고 투명했다. 그저- 풋풋하게 아린 냄새가 진동하는, 미소 지을 수밖에 없는 그런 추억이다.
그 후로 나중에, 2년의 시간이 흘러서 너와 나는 정말 친구로서 가까워졌다. 내가 다니던 학원 수업 시간 전에 붕 뜨는 시간이 있으면 넌 언제나 같이 내 시간을 멈춰주었지. 옆 초등학교 운동장에 앉아 두런두런 그날의 쓸데없는 대화를 하다 보면 난 수업 들으러 가야 했고 넌 의젓하게 친구역할을 다 했다는 듯- 뒷모습을 보여주곤 했어. 내가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아 참 힘들어할 때에 넌 이런 식으로, 거대하지만 은근 티 안 나게 내 곁에서 힘이 되어주곤 했다. 시간이 지난 후였지만서도, 우린 친한 친구였지만 서도, 매일 같이 나와 시간을 보내주는 너에게 나는 참 많이 떨려했었다. 좋아하는 감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팔 뒤쪽 살에 소름이 돋을 만큼, 그만큼 떨렸어 난.
입시가 다가오고 서로의 진학 학교가 멀어지면서 우리 사이도 그 거리만큼 멀어졌다. 그래서 난 어른이 되어서도 '초등학생 때부터~ 중고등학생 때부터~ 사귀던 사이였어요~' 하는, 이런 러브스토리를 믿지 않게 되었다. 뭔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너와 함께 하던 순간들보다 어른으로 지낸 시간이 더 긴 요즈음에 문득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한쪽 눈이 감길 만큼 시큼하면서 풋내 나던 내 어린 첫사랑의 향기들이. 알 듯 말 듯 숨겨야만 했지만 그러면서도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했던 내 안의 작은 말괄량이 소녀를.
어른이 된 넌 아직도 모르겠지?
처음 우리 같은 학원 다닐 적, 쉬는 시간에 내가 친구들에게 한개씩 나눠줬던 마이쮸 말이야.
네 책상엔 두 개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