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순간에도 하늘은 맑더라.
‘할머니 좀 전에 돌아가셨어~’
10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점심 먹고 일하던 시간에 엄마에게 연락을 받았다. 최근 매일을 곤두세웠지만 늘 이별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예상했어도, 의사의 준비하란 말에 준비를 했음에도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엔 준비도 예상도 모조리 쓸모없어진다. 그냥,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주변 가까이 사는 사촌언니와 오빠와 간단히 연락을 하고 그날 저녁 장례식장으로 떠났고 산속 시골의 장례식장은 촉촉하고 고요하나 소담히 어수선했다. 살면서 마주했던 장례식장의 공기는 계절을 따질 필요가 없었다. 늘 어수선했지만 고요했고 건조했으나 눈물이 많았다.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발인 날 발인지인 속초로 떠났다. 떠나보내는 이들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날은 미세먼지 하나 없이 하늘은 파랬고 태양은 따가웠고 강원도의 험한 산이 그림같이 보일 정도였다. 우리 까탈스럽고 깔끔한 소녀 같은 할머니, 맑고 깨끗한 날 골라 바람처럼 떠나는구나 싶었다.
블라인드 하나로 단절된 분향소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을 태우는 중이었다. 엄마와 둘이서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바닥만, 정면의 제사상만 바라보는 도중에 밖에 나가 바람 쏘일 겸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신 아빠가 엄마 옆에 앉아 다정히 어깨동무하고 상기된 얼굴로 말씀하셨다.
“방금 밖에서 택이(아들)랑 봤어. 둘이서 하늘이랑 나무 보면서 있는데 웬 하얀 나비가 가까이 오더라니까? 그 나비가 우리 가까이 오더니 돌아서 뒤로 저 멀리 숲으로 돌아갔어. 보통 나비가 사람 가까이 오지 않거든? 장모님이 나비로 오셨나 봐. 딱 장모님 같이 하얀 나비로 오셨나 봐. 걱정하지 마. 당신.”
간절한 사람은, 특히나 누군가를 잃은 간절한 사람은 무언가로부터 투영해 위로받기 마련이다. 아빠가 본 하얀 나비는 그저 나비일 뿐이었을지도 모르나 나는, 우리 가족은 그저 믿고 싶었다. ‘하얀 나비’라는 것조차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모습에 딱 맞았기 때문이다.
아빠가 엄마를 위로하는 그 모습을 옆에 조용히 앉아 바라봤다. 지금의 이 상황에 배우자를 위한 최고의 위로라고 생각했다. 매번 치고받고 싸우거나 버티다 이른 나이에 갈라 선다는 아무개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듣다가 60대 내 부모님의 묵직하고도 부담스럽지 않은 배우자를 배려한 위로를 보며 이런 하루하루를 보다 정드는 건가 생각되기도 했다. 이 생각에 머무를 즈음 아빠는 엄마의 어깨를 감싸고 밖으로 나섰다. 어느 부분에서 나비가 날아와 어디로 날아갔는지 손짓으로 가리켰고 엄만 그저 울며 바라볼 뿐이었다.
정신없고 초췌한 짧고도 긴 시간이 흘렀다. 남은 누군가를 걱정하기도 하고 내 일상을 그대로 살아가는 도중에도 문득 아주 최근의 이별이라 상기되곤 한다.
몇 달 지나지 않은 지금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그날처럼 하늘이 파랗고 차가운 공기와 태양이 따스한 날이면 다시 이 모든 생각들을 곱씹어보곤 한다. 어쩔 수 없이 떠난 이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와 나 자신에게의 위로다.
-초겨울 나비가 된 그녀를 위해, 흠뻑 겨울을 보내고 있는 손녀 드림, 다가 올 봄날 훨훨 날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