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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미곡_1

예상하는 이별의 기다림이란

by 이제이 yzeyh

“허-.. 나보고 나경이래.”





새벽녘 갑자기 의식이 없어져 요양원에 입원하신 외할머니께 급히 간 엄마의 첫 전화 통홧말이었다. 2주 전, 추석 연휴에 일이 바빠 출근한 내가 찾아뵙지 못한 염치에 곶감 선물 잘 받으셨냐며 외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했을 적엔 손으로 브이를 만들기도 하며 고맙다 인사하셨던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반나절은 의식이 없으시다 최근 2-3년간 고관절 수술 후 간간히 오며 가며 병간호를 한 넷째 딸인 엄마를 보고 할머니는 같이 사는 친손주 이름을 말씀하신 거다.




그 한마디에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이없으면서도, 이제 어떡하나 싶으면서도, 얼마 안 남았구나 싶으면서도, 아득해지는 늙은 어미가 원망스러운 듯.


그 짧은 한마디에 나조차 마음이 급해졌다.



며칠 후, 가까이에 사는 큰 이모의 딸인 사촌언니와 퇴근 후 저녁 급히 강원도 양구로 떠났다. 어쩌면 살아계실 적 뵐 수 있는 마지막 외할머니의 얼굴을 마주하러 떠났다. 언니가 운전하는 차 안에선 3시간 동안 서로를 위로하는 듯한, 어릴 적부터 우리 외할머니가 얼마나 강하셨는지. 자주 편찮으셨음에도 끼니 굶지 않으시고 버텨오셨는지 또는 우리가 자라오며 외가에서의 재밌었던 기억들로 시간을 보냈다. 은근히, 많이 남지 않은 시간을 인정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외할머니가 잠드셔야 하는 어둑한 저녁에, 이상하리만큼 추웠던 10월 셋째 주 어느 저녁에 외할머니께서 입원해 계신 요양원에 도착했다. 외삼촌과 사촌오빠 내외에 엄마를 마주해 포옹하고 아직은 면역력이 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코로나로 인해 조심스러웠지만 많이 외로운, 깍쟁이 소녀의 마음을 가진 우리 외할머니가 홀로 버티기엔 차가운 병실로 들어섰다.




할머니를 둘러싼 거창한 기계는 없었다.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우릴 알아보지 못하셨고 눈만 겨우 뜬 상태셨다. 엄만 할머니 귀에 대고 조심스럽게 당신이 보고팠던 손주들 왔노라며 얼굴 한번 보라 하셨다. 일하다 퇴근 후에 온 거라 많이 볼품없었지만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선 이의 눈에 무엇이 중요하랴 싶었다.

할머니 나 왔다고, 기다려주셔서 고맙다며 오랜 시간 작은 몸으로 고생하셨다며 마지막엔 너무나 사랑한다 귀에 속삭였다.





내가 마주했던 누군가의 떠남에 있어서는 내 마음을 표현한 일이 없었다. 기다려주지 않았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무언가를 보려 하는 조금은 뿌연 할머니 눈을 마주했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얼마 전 나와 영상통화 했던 우리 할머니가 맞는가 싶기도 했다. 나를 쳐다보는 그 눈동자 보다도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할머니 입에 더 집중이 됐다. ‘보고 싶었는데 바쁜 내 새끼들이 와줬구나, 다 보인다, 고맙다.’ 정도로 말씀하셨을 거다.


처음엔 눈물이 핑 돌다가 우리 할머니 외롭겠다 느꼈다가 조금씩 내 주변을 감싸는 공기가 느껴졌다. 그리 반가운 공기는 아니었다. 할머니 입 속에서 퍼지는 얼마 남지 않은 이승의 시간이었다. 이승에서의 육체가 시간이 다가오면 알려준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할머니를 만나고 언니와 나는 외가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녘 서울로 떠났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그녀는 조용히 긴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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