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이 잊혀지는 것에 대하여
영어로 conscientiousness라는 단어는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읽기도 쉽지 않다. 학창 시절 이 영어단어를 보곤, 우리말의 '성실'은 ‘정직’과 함께 너무도 흔하게 쓰는 단어인데, 영어에서는 성실함이 흔하지 않은지, 자주 쓰기엔 너무 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The troubling decline in conscientiousness」라는 글이 한 편 올라와서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읽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생각보다 조금은 무겁고 제목처럼 우려스러웠다.
기사에 따르면, 16-39세 청년층의 성실성 지수가 2014년 50에서 2024년 35로, 10년 사이 무려 30%나 급락했다고 한다. 처음엔 그저 통계 수치 정도로 여겼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이는 단순히 개인의 게으름이나 나태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중요한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 기사는 성실성(conscientiousness)을 "the quality of being dependable and disciplined", 즉 '신뢰할 수 있고 규칙을 따르는 자질'로 정의했다. 그리고 이 성실성이 생각보다 훨씬 소중한 특징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성실성은 지능이나 사회경제적 배경보다도 전문적 성공, 관계의 지속성, 심지어 수명에까지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성실한 사람들은 더 오래 살고, 직업적으로 더 성공하며, 이혼할 확률도 낮다는 뜻이다. 짐작처럼 경기침체 때도 직장을 더 잘 유지한다. 왜일까? 아마도 인생이란 단순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나 그것을 할 자원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 그 꾸준함과 끈기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재미있지만 역설적인 점은 현대 사회에서 성실성의 가치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모바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온라인 게임과 스트리밍 서비스로 가득한 일상에서, 이 모든 달콤한 유혹들을 뒤로하고 장기적 목표에 집중하는 능력은 매우 찾아보기 힘든 ‘희귀템 (rare item)’에 가깝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이런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성실한 학생은 AI를 현명한 도구로 활용해 자신의 역량을 키우겠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은 AI에 기대어 생각하지 않는 습관을 기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소중한 경쟁력을, 아니 삶의 자질을 집단적으로 잃어가고 있다. Understanding America Study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더욱 우려가 커진다. 20-30대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라고 답한 비율이 2018년 4.1점에서 2024년 3.8점으로 떨어졌고, "끝까지 인내한다"는 4.3점에서 4.0점으로 하락했다. 대신 "쉽게 산만해진다"는 2.7점에서 3.1점으로, "부주의할 수 있다"는 2.3점에서 2.7점으로 상승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디지털 세계가 현실 세계를 조금씩 밀어내는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로 대표되는 언제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의 주의력을 끊임없이 분산시키고, 계획을 세우거나 끝까지 완주하는 것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온라인 세계의 매끄러운 편리함이 현실의 약속과 책임을 거칠고 번거로운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대면으로 만나는 것보다 상대방과의 모든 연락을 경고나 설명 없이 갑자기 끊어버리고 외면하는 '고스팅(ghosting)'이 더 쉬워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는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창의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의 기본 가치인 서로를 향한 신뢰와 연대에 직결되는 문제다. 덜 집중하고, 덜 연결되어 있으며, 더 쉽게 포기하는 세대가 사회의 주축이 된다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수십 년간의 연구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이런 성격적 변화들은 모두 개인과 사회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세대 차이가 아니라, 디지털 문명이 인간의 기본적인 성품에 가하는 전례 없는 도전이라는 점이다. 이 도전에 어떻게 응답하느냐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성실함을 요구한다. 그래서 걱정하기보다는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야 하나' 하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가 좋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책 한 페이지를 끝까지 읽어보거나,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찾아 1번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다 들어 보는 것, facebook으로 안부를 전하는 것보다는 예전처럼 약속을 정하고 몸을 움직여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 작은 성실함들이 모여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조금씩 되찾아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