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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Oct 04. 2018

에브리 데이

아닌 게, 아닌데?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일 잠들고 일어나면 같은 지역의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로 일어나 하루를 살아가는 ‘A’. A가 ‘리아넌’(앵거리 라이스)의 남자친구 ‘저스틴’(저스티스 스미스)로 일어난 날, 두 사람은 학교를 벗어나 둘 만의 특별한 하루를 보낸다. 그 날, A는 리아넌에게 사랑을 느끼고, 리아넌은 그 날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평소의 무심한 남자친구가 된 저스틴에게서 전에 없던 이물감을 느낀다. 

  ‘그날의 저스틴은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이 깊어질 즈음, A가 자신의 정체를 그녀에게 밝힌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일어나 살아간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매일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와 이어가니 리아넌도 A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몸. 리아넌의 몸으로 눈을 뜨게 된다.      



- 아닌 게 아닌데?     


  영화 <뷰티 인사이드>가 바로 떠오르는 매일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과의 연애라는 설정. 다른 점이 있다면, 외형만 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 중 하루’를 빌린다는 것인데, A가 리아넌의 몸으로 일어나는 순간, 영화의 설정은 독특함을 드러낸다. ‘그냥 비슷한 영화일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건 아닌데?’

리아넌의 몸으로 살아가는 하루. A는 리아넌으로 살면서 그녀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고. 리아넌 또한 자신의 삶의 축을 아무 미세하게 바꾼 나를 가장 잘 아는 그 사람 A에게 끌리게 된다. 두 사람이 연애 궤도에 오르면서 영화는 다시 하이틴 로맨스의 정석을 따라 걷지만, 영상과 의상, 그리고 ‘다양한’ 젊은 두 사람의 연애로 영화의 색은 어느 정도 지켜진다. 

  영화 <에브리데이>에서 가장 특별했다고 생각되었던 부분은, A로 드러나는 다양한 삶의 존재들이었다. 시각장애인 소년, 폐 이식을 받고 있었던 아이, 자살을 계획 중인 아이, ‘그녀’의 몸인 ‘그’, 동성의 몸으로 리아넌을 찾아가 입을 맞추는 모습 그리고 자신을 남자이자 여자로 느끼는 A 등 국내에서는 일상의 일부로 제시되지 않는 소수성이 편견 없이 A의 하루로 제시된다는 점이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다양성’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준다. 

  ‘매일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설정의 영화가 다양함을 쉽게 취할 수 있는 동시에 쉽게 벗을 수 없는 점이 ‘다양함 덕분에 빛나는 완벽함’이다. 이 영화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결국에 A가 머무른 가장 마지막 몸이 리아넌의 이상형인 ‘키 크고 날씬하고 어깨가 넓고’ 그에 더해 A가 봤을 때, ‘괜찮은’(건강한 인생관을 가져 장래가 유망함, 지적이면서도 다정함, 요리도 잘하고 가정적인데 집도 넉넉히 사는) 아이인 ‘알렉산더’(오웬 티크)였다는 점에서. 내가 떠난 후 이 몸의 주인인 알렉산더와 만나야 한다는 A의 말에 그전에 있었던 영화의 로맨스적인 흐름도 그리고 영화가 보여준 다양성도 와장창 하고 깨졌다. ‘아닌 게, 아닌데?’

  리아넌은 떠나야한다는 A를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기에 그와 함께 하는 자신이 얼마나 외로움과 특수한 상황에 방치될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둘 만의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헤어진다. 생각 외로 담담한 두 사람의 이별. 다음날 아침 알렉산더는 리아넌에게 인사를 건넨다. 가장 A다운 방식으로 “당신은 멋진 미소를 가지고 있어요.” A는 그렇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고, 앞으로도 흔적들을 남기고 살기로 한다. 

  영화 속 A는 흔적으로 존재를 남긴다. 그가 남기는 흔적이란 누군가에게는 하룻밤 자유로운 일탈의 댄스였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깊은 관계가 시작되는 진솔한 대화였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기로 앞에서의 치열한 내적인 싸움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영화 속에서 A는 사람으로 제시되었지만, 그 ‘사람’은 용기를 내어 일상의 축을 약간 비틀 ‘나’이지 않을까. 내가 해 놓고도 놀라운, 매일 속에서 ‘나만의’ 삶을 만들어낸 ‘나’의 숨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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