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피가 번지는 ‘터’를 향한 잔인한 탐욕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학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 <명당>은 ‘풍수’를 주제로 땅의 기운을 빌려 운명을 지배하려는 인물들을 엮는다. 왕가의 대를 끊으려는 장동 김씨 일가와 위태롭게 왕위를 지키고 있는 ‘헌종’(이원근). 그리고 장동 김씨 일가와 ‘복수’라는 목적으로 얽힌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과 ‘흥선’(지성)이 손을 잡아 조선의 운명을 쥐고 흔드는 장동 김씨에 맞선다. 

  <명당>의 분위기는 역학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 <관상>과 맥을 같이한다. 흔들리는 왕권을 운명의 힘을 빌려 쥐어보려는 탐욕들이 어지럽게 얽히는 스토리가 그렇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명당>에서 인물들이 쥐려고 하는 자리는 대대손손 자손이 피는 ‘묏자리’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손에 쥘 운명에 대를 거친 목숨을 갈아 넣는다는 점에서 <관상>보다 더 잔혹한 구조를 가진다. 

     

- 피가 번지는 ‘터’를 향한 잔인한 탐욕     

  영화는 ‘화’(火)로부터 시작한다. 왕릉의 터를 보는 자리에서 충언을 건넨 박재상을 고깝게 본 ‘김좌근’(백윤식)이 그를 처단하라고 지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 일로 박재상은 아내와 아이를 잃고 재야에 묻혀 복수의 날을 간다. 

  왕권이 김좌근 일가에 먹혀 쥐고 흔들리는 동안, 왕손인 흥선은 개만도 못한 처지로 양반 일가를 떠돈다. 그는 지금 양반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개 짖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그들을 향한 분노 그리고 왕권을 일으키겠다는 복수심이 이글거린다. 

  김좌근이라는 하나의 인물이 내린 두 갈래의 복수는 두 인물이 빠르게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들이 함께 노리는 것은 김좌근 일가의 묏자리 지도이다. 그 터를 알아야 대대손손 왕가를 쥐고 흔드는 그들의 혈을 끊을 수 있다. 

  영화는 <관상>에서보다 더 많은 갈래를 두어 그들이 탐하는 ‘운명’, 곧 권력이 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자손이 덕을 보는 ‘묏자리’를 두고 벌이는 그들의 암투에는 목숨을 갈아 넣어 권력을 취하고, 복수하려는 살벌한 기운이 서려있다. 나의 묏자리를 좋은 곳에 두어 김씨 일가의 혈을 끊어달라는 헌종, 왕조의 성을 갈 ‘이대천자지지’를 얻기 위해 아비의 목숨을 제 손으로 앗아가는 김좌근의 아들 ‘김병기’(김성균),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왕의 권력을 취하고 싶어 손을 피에 적시는 흥선까지. <명당>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 혹은 그보다 더한 목숨들을 갈아 넣을 자세가 되어있다. 그렇기에 인물들은 부싯돌이 되어 부딪히는 순간마다 갈등이 튀어 오른다.

  <관상>에 이어 <명당>에서도 운명을 읽는 자는 그 운명을 탐하는 자들 사이에 끼어서 화를 입는다. 영화는 이야기를 불타는 가야사에서 끝맺는다. 불이 번져 오르는 대웅전을 바라보는 박재상을 통해 운명을 알고도 인간의 탐욕 사이에서 그 운명을 멈출 수 없는 운명을 읽는 자의 비극을 보여준다. 그렇게 스러지는 전당과 함께 조선도 역사에서 스러진다. 하지만 재야에서 사람들과의 연을 끊고 살았던 <관상>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박재상은 일그러진 탐욕과 피로 점철된 역사를 가지고서도 땅을 찾아 떠난다. 그 땅이 운명을 바꿀 땅이 아니라 사람을 살릴 땅이라는 것. 그의 변화한 시선에서 ‘운명’은 ‘희망’이라는 이름을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