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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Sep 08. 2018

체실 비치에서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에게 흔하게 건네는 조언이 있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 여기 선택에 기로에 놓인 부부가 있다. ‘에드워드’(빌리 하울)와 ‘플로렌스’(시얼샤 로넌). 이제 막 결혼한 지 몇 시간 되지 않는 두 사람은 신혼여행을 온 체실 비치에서 일생일대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영화 <체실 비치에서>는 엇갈린 두 사람의 선택과 그 선택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두 사람의 일생에 걸친 회한이 담긴 영화다.      



-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     


  영화는 에드워드와 플로렌스가 헤어지기까지의 6시간을 그들의 과거를 교차시키며 그들의 사랑과 갈등을 쌓아올린다. 어리고 서툰 두 사람의 첫 관계는 어딘가 웃음을 자아내며 코믹하게 진행되지만 그 사이에 끼어있는 두 사람의 사랑의 역사는 꽤나 농도 짙고 진지하다.

  에드워드의 어머니는 불의의 사고로 ‘뇌손상’을 입어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인 그의 집은 온전치 못한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일과 어머니를 챙기느라 정신없이 바쁘시고, 두 명의 여동생들은 에드워드보다 한참 어리다. 에드워드는 그의 대학 수석 졸업 소식을 함께 공유하고 기뻐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렇게 외로운 그의 삶에 우연히 그렇지만 강렬하게 플로렌스가 들어온다.

  플로렌스는 계층적으로 고위층의 집안에서 자란 고고한 꽃 같은 사람이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그녀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러던 중에 에드워드를 만난 그녀. 순수한 그녀는 마음만은 열렬히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에드워드와의 관계가 묘하게 부담스럽다. 언젠가 자신을 스스로 꺾어야 할 때가 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결혼을 코앞에 두고도 그녀는 혼란스럽다.

  분명 서로를 사랑하고 있지만, 어딘가 어긋나고 있는 두 사람. 그래서였을까, 첫 관계를 위해 가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 에드워드가 플로렌스의 옷가지들을 벗길 때마다 옷가지들은 플로렌스의 마음처럼 굳게 다물어 열리지 않는다. 드레스의 지퍼가 걸리기도 하고, 생각보다 복잡하게 물려있는 스타킹은 에드워드의 생각처럼 쉽게 벗겨지질 않는다. 결국 이 옷들은 대부분 플로렌스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풀어낸다. 결국 두 사람은 첫 관계를 가지던 중에 크게 어긋나 버린다. 섹스를 책으로 배운 플로렌스가 소스라치며 방을 뛰쳐나가 버린 것이다. 에드워드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두 사람은 이렇게 짧은 순간에 일생의 선택 앞에 놓인다. 이 결혼의 미래를 두고서 앞으로 갈지 말지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에드워드는 자신을 거부하는 플로렌스를 보자 그동안의 그가 느꼈던 모든 열등감이 쏟아져 나온다. 집안의 계층 차이로부터 시작해서 플로렌스 아버지가 자신의 회사에 들어와 일하게 했던 사실까지 그가 사랑에 앞서 ‘돈’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던 모든 사건들이 그를 분노하게 만든다. 이제 당신은 나의 아내인데, 앞으로 섹스는 피할 수 없는 일일 텐데, 사랑하는 사람과 잘 수 없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고 에드워드는 플로렌스를 쏘아붙인다.

  플로렌스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을 계속해서 미래로 이어붙이고 싶어 한다. 영화 초반, 에드워드는 농담조로 플로렌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서양문명 통틀어 가장 고지식한 사람이야”라고. 하지만 플로렌스는 섹스 때문에 결혼을, 사랑을 놓치게 될 절체절명과 같은 순간 앞에서 가장 관념에서 먼 꿈을 그린다. 우리는 섹스 없이 사랑만 할 수 있는 관계, 그런 결혼을 할 수도 있다고.

  그리고 영화는 시간을 뛰어넘어 1975년과 2007년의 에드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둘은 헤어진 상태이며 에드워드는 노년에는 홀로 외롭게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깊은 회한의 순간이 두 번 찾아오는데, 1975년과 2007년은 그가 인생에서 그 사건들을 마주한 순간들이다. 결혼하자마자 헤어진 그 날, 어쩌면 자신의 딸일지 모를 아이 ‘클로이’를 만난 날과 플로렌스의 위그모어 홀 고별 공연 날이다.

  1962년 체실 비치에서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에게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같이 돌아가자, 둘이서.”라고. 에드워드는 그 날 그녀의 손을 잡지 않음으로써,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했다. 그 선택 이후에 오는 회한의 감정은 그녀가 함께 그려나가자고 했던 미래의 한 장면인 딸 클로이와 위그모어 홀에서의 공연이라는 사건 앞에 파도처럼 차오른다. 플로렌스는 어떤 쪽이든 선택해 나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에드워드는 계속해서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이는 사람인 동시에 그 선택을 놓치고 쓸려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영화는 주름 가득한 에드워드의 깊은 회한의 눈물, 젊을 적 그렸던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이별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마주하게 된 플로렌스의 눈물을 보여준다. 어떤 선택은, 그리고 어떤 사랑은 내내 한 시점에 서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난 두 사람은 여전히 체실 비치, 그곳에 서서 자신을 잡아줄 그 사람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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