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옹 Aug 28. 2018

서치

밀착되었지만 너풀거리는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SNS를 모두 정리한 적이 있었다. ‘있었다’고 말한 것은 자의는 아니었지만 다시 그 중력에 빨려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리할 당시에 가졌던 SNS에 대한 회의감은 여전하다. 그곳은 작은 바람이 일어도 너풀거리는 곳이었다. ‘친구’라는 이름조차도 한없이 가벼워지는, 그리고 친구 외에 우리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조차 손짓 한 번으로 좋고 싫어지는 그런 곳. 

  영화 <서치>의 실종된 딸 ‘마고’(미셸 라)를 찾아 SNS의 바다를 헤매는 그녀의 아빠 ‘데이빗’(존 조)은 허풍으로 너풀거리는 그 공간에서 삶에 가까워질수록 멀어져만 가는 공유된 관계들에 치이고 상처 입는다. 그래도 아빠는 클릭을 멈추지 않는다, 어딘가에 딸이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에.      



- 밀착되었지만 너풀거리는     


  영화 <서치>는 처음 마주할 때부터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때까지 종일 모니터에 반사된 화면을 보여준다. 어느 것도 카메라가 직접 담아내지 않는다. 내가 찍거나 누군가가 나를 찍는 ‘찍혀진’ 화면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상황을 능동적으로 끼워 맞추게 한다. 계속해서 저 영상은 어느 매체로 어디서 나오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영화가 클릭하여 화면을 끄는 순간관객들도 스크린이라는 반사된 화면을 통해 이 모든 사건들을 ‘관전’ 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고에게 친구가 있기는 했었냐는 동생 피터의 말에 아빠 데이빗은 이렇게 되묻는다. “어디까지가 친구인데?” 영화는 내내 스크린에서 다른 스크린으로 이동하면서 그곳에서 연결된 사람들이 과연 진정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되묻는다. 그리고 마고의 실종은 아빠인 데이비드에서부터 시작해 온라인에 맺어진 200 여명, 그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연결된 미국인들 전부를 너풀거리게 한다. SNS가 내걸고 있는 Social과 Network라는 단어가 얼마나 얄팍했는지 데이비드를 둘러싼 가십과 그것에 흔들리는 데이비드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는 편집된 온라인의 정보들을 또 가공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의심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극 중에 스쳐간 전 인물들을 다루는 능력에 관객들은 어느 때보다도 능동적이지만 어느 때보다도 수동적으로 영화에 몰입해 끌려간다. 마고를 찾는 데이비드의 분투가 마무리 될 시점에 되면, 긴장의 끈을 놓고 다른 생각의 꼬리를 물게 되는데, 그것은 마지막까지 클릭과 공유로 연결된 그들은 어떻게 관계를 되찾았는가 하는 물음이다. 

  SNS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해 다른 모든 만남을 끊었던 그들은 마고의 실종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을 계기로 모든 관계를 헤집어 뭍 위로 올려놓는다. 그리고 온라인 상에서의 ‘친구’라는 허물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얼굴을 붉히고 소리치고 목을 조를지라도 얼굴을 마주할 때 모든 오해가 문맥에서 빈자리들을 채워 풀린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전시하고, SNS로 관계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대리하고 있는가. 언제부터 내가 말 끝에 붙은 점 하나에, 이모티콘 하나에 고민하게 되었을까. 영화가 끝난 그 자리에는 표면적으로 크게 확장되었지만 관계의 진정성에서는 그만큼 멀어진 지금 우리네 손에 남은 관계들이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와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