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옹 Oct 21. 2018

반전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유주얼서스펙트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빠는 매일 같은 패턴의 주말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찍어내는 엄마한테 매번 같은 말을 한다. “똑같은 이야기들 맨날 봐도 재밌어?”라고. 다 똑같으니까 눈물 나는 드라마는 그만보고 매일이 진검승부인 바둑이나 야구를 보자는 속셈으로 하는 말이다. 내가 봐도 주말드라마는 몇몇 컨셉만 시대에 겨우 발맞춰 갈 뿐 대부분 저번 주에 종영했던 드라마와 비슷한 가족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매주 엄마들을 TV앞에 앉게 만드는 건 ‘알면서도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집안에 콩가루 굴러가는 소리냐 싶겠지만, 사람들이 영화는 보지 않아도 결말은 알고 있는 영화들이 있다. 반전이 너무 중요한 나머지 반전부터 알게 되어버린 영화들. <식스센스>, <유주얼 서스펙트> 이 두 편의 영화가 대표적이다. 나 또한 반전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해주었다. “절음발이가 범인이야”라고. 그가 절던 다리를 꼿꼿이 펴고 걸어가는 장면이 있다고. 나는 보지도 않은 장면을 제멋대로 상상했고, 보지도 않은 영화를 이미 다 본 사람처럼 구석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이 영화를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엄마가 왜 비슷한 주말드라마를 매일 보는지 알 것 같았다.      



- 반전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이미 알아버린 한 줄의 반전이 영화가 끌고 온 두 시간의 면밀하게 계산된 이야기들의 무게를 이길 수 없었다. <유주얼 서스펙트> 이후의 반전영화들의 틀과 시대에 맞춘 잘 빠진 이야기들을 보고 자라난 나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부분 부분들이 탈색된 듯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꿰어진 것은 내가 봐 왔던 반전영화들은 이 영화를 시작으로 진화되어 왔음을 느꼈다. 나는 영락없는 엄마의 아들이라서, 비슷한 영화들을 보면서 매번 흥미진진해왔고, 뒤통수를 쌔게 맞고서 영화관을 나서는 걸 즐겼던 것이다.

  영화는 ‘버벌킨트’를 취조하는 ‘쿠얀’의 이야기가 현재를 기점으로 주축을 이룬다. 하지만 킨트는 쿠얀에게 지난 사건들을 주절거리면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주된 긴장을 이리저리 바꾸는데 그 능수능란함에 쿠얀을 비롯해 관객들까지 이야기에 빨려들게 만든다. 카드놀이의 첫 패를 돌리듯이 무작정 던져 놓은 5명의 용의자. 그들 사이의 긴장과 협력에서부터 키튼을 그리는 킨트의 시선, 절대 악으로 등장한 카이저 소제까지. 그는 가히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 수준의 이야기꾼이다.

  반전을 알고 본 나에게 이 영화의 최대 반전은 ‘고바야시’였다. 이건 헤어지는 마당에 ‘다 거짓말이었어’ 보다 ‘그 땐 진심이었어’ 라는 말이 주는 여운이 큰 것과 같다. 대체 버벌킨트의 진실은 어디까지였을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지만 실은 이 질문보다 더 소름끼치는 것은, 이게 모두 다 이름만 바꾼 ‘진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이지 않을까. 나에겐 범죄자들도 벌벌 떠는 절대 악이 또 다른 전설을 만들며 유영하듯 사라진 걸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서늘함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의 나처럼 반전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영화를 속단하신 분들이 있다면, 한번쯤 이 영화를 겪어보기를 추천한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우리는 생각보다 모르니까. 그러다 보면 자신의 뜻밖의 취향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