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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Oct 01. 2018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영화’는 절대로 멈추면 안 돼!

  


  영화는 좀비물 촬영 현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고 발연기를 선보이는 여주인공에게 “표현하는 건 진짜가 아니잖아, 네 인생이 거짓말투성이라 그래!” 라고 폭언을 쏘아 붙이는 감독. 42테이크 째 같은 장면을 찍고 있는 촬영장은 쌓아둔 불화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촬영을 쉬는 동안 감독이 자리를 비운 사이, 촬영장에 내려오는 도시전설처럼 좀비사태가 황당할 정도로 갑작스럽게 전개된다. 피범벅이 되어가는 혼란스러운 촬영장에서 감독은 광적으로 촬영에 집착한다. “카메라는 안 멈춰!!” 영화는 B급 냄새를 풍기며 기묘하게 내달린다. 

  이윽고 영화는 피를 뒤집어쓴 여주인공이 서 있는 라스트 신과 함께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하고 ‘설마?’하는 그 때,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 ‘영화’는 절대로 멈추면 안 돼!     

 

  앞 선 영화 <One Cut of Dead>에서 광인처럼 촬영에 집착해, 좀비보다 더 무시무시했던 감독역할을 맡은 ‘히구라시’(하마츠 타카유키). 1달 전의 그는 방금 봤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글서글하고 푸근한 인상이다. 그는 예능프로 재연영상이나, 노래방 배경영상을 “빠르고 싸고 그럭저럭” 찍어내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그에게 말도 안 되는 하드코어한 제안이 들어온다. 새로 개국하는 좀비채널에서 ‘30분간, 원 테이크 원 컷, 생중계’로 드라마를 감독해 달라는 것. ‘그럭저럭’ 해내주기만 하면 되는 눈치이지만, 아무리 ‘그럭저럭’이라도 좀 힘들 것 같다. 

  그런 히구라시를 <One Cut of Dead>에 뛰어들게 만든 사람이 바로 그의 딸 ‘마오’(마오)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촬영현장에서 스텝으로 일하고 있지만, 과한 열정 탓에 번번이 중간에 퇴짜를 맞는 마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드라마의 주연을 맡아 히구라시는 딸을 위해 말도 안 되는 30분, 원 테이크 원 컷 드라마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리허설. 영화를 위해 모인 배우들이 모두 보통이 아니다. 기획사를 핑계로 대본을 수정하는 여주인공, 연기 철학만 가득한 남주인공, 거기다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배우는 알콜중독으로 술을 달고 다니고, 새로 들어온 조연은 물까지 가리며 까탈스럽게 군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 드라마는 난항을 겪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역시나, 촬영 당일 불륜관계였던 감독과 스테프 역할을 맡았던 남녀 배우가 자동차 사고로 오지 못하게 되고, 급하게 시나리오를 숙지하고 있는 감독 히구라시와 배우로 활동한 적 있는 그의 아내 ‘하루미’(슈하마 하루미)가 투입되며 사람들은 달려가는 30분의 시간으로 던져진다. 

  준비되지 못한 곳에서는 ‘퐁!’하고 사건과 애드립이 터져나오고, 준비한 곳에서는 이탈 사건들이 터져 나오는 30분간의 난장판 같은 논스톱 드라마. 어찌어찌 굴러가고 있는 그 현장에서 사람들은 ‘진짜’를 외치며 열정을 불사르는 히구라시 가족들에게 전염된다. 영화를 향한 몸을 아끼지 않는 열정은 30분 동안 좀비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간다. 

  이 영화의 재미와 감동은 앞서 들이댔던 30분간의 2% 모자란 영화가 원 테이크였다는 점에서 한 번. 그리고 그 원 테이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계획들이 있었고, 계획들 사이에는 촘촘한 열정들이 엮여 있다는 것에서 한 번.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진짜’를 만들어내고자 몸을 불사르는 날 것의 열정에 또 한 번 층을 더해 제시되며, 극이 정신없이 내달리는 와중에도 그들과 함께 차오르는 뿌듯한 감정을 공유하게 만든다. 

  30분짜리 원 테이크 생중계 드라마에서 화제성 외에 바라지 않았던 좀비채널 사람들과 기획자들도 감독과 스텝의 열정에 함께 취해 넘어진 크레인을 대신해 인간 탑을 쌓아 라스트 신을 완성해낸다. 아빠의 어깨를 탄 마오의 모습에서 ‘가족애’ 라는 마지막 실을 꿰어내는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30분 동안 뿌려낸 떡밥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말끔하게 거두어들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그 자체로 ‘영화를 찍는 일’에 대한 자기 소신과 열정을 보여준다. 영화를 찍기로 했다면, “진짜”를 찍어야 하고, 카메라는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된다고. 온 몸을 던져서라도 카메라로 찍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영상매체와 자료들이 넘쳐나는 시대. 갖가지의 형식으로 창작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영화는 이렇게나 웃기지만, 묻는 질문은 무겁다. 과연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작품’들이 모두 ‘진짜’인지. 그것을 묻는다. 그 질문은 이 영화의 형식으로도 강렬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를 앞에 30분만 보고 돌아선다면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그 뒤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감독은 짧은 시간에 관객들을 빨아들이려고 갖은 장치를 남발하는 영화와 영상들에게 한 방 제대로 먹였다. 

  짧고 강렬해지는 영상 매체의 풍토에 대해서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영상을 보는 이들도 이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영상을 대할 때 어디까지 침투하는가. 영상 표면, 배우들의 연기, 영상이 가지는 가쉽 그 정도에만 머무르곤 하지 않는가. 영상 너머의 진짜는 무엇인가. 히구라시가 기를 써서 방영해 낸 <One Cut of Dead>를 실제로 찍은 스텝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의 진짜 엔딩크레딧을 보면 이런 저런 생각이 움을 튼다. 생각들이 복잡하게 자라난 그 자리에는 ‘진짜’를 찍은 그들의 열정에 대한 경외의 마음이 핀다.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영화’는 진짜를 갈구해야하며, 절대로 한 자리에 멈춰서는 안 된다고.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고 그 곳에 열정으로 달궈진 손과 발을 담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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