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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Sep 16. 2018

보리vs매켄로

게임보다 치열한

  푸른 잔디밭 위, 하얀 운동복을 입고 가장 치열한 게임을 벌이는 권위 있는 테니스 대회 윔블던. 1980년, 윔블던 4연승을 달려온 ‘미스터 아이스’라고 불릴 정도로 냉철한 성격의 ‘보리’(스베리스 구드나손)와 ‘코트 위의 악동’이라고 불리며 악명과 실력을 동시에 쌓으며 치고 올라오는 신예 ‘매켄로’(샤이아 라보프)의 우승을 건 첫 서브가 던져진다. 

  영화 <보리vs매켄로>는 코트 위의 신사와 악동으로 불리는 극점에 있는 두 사람을 파헤치듯 그려낸다. 그들의 테니스 인생의 시작은 어땠는지, 어떻게 ‘신사’와 ‘악동’이라는 이름을 달고 정상에서 만나게 되었는지를 촘촘하게 그리며 마지막 빅 매치를 위해 엮어 올린다.      



- 게임보다 치열한     

  영화의 첫 장면, 보리가 높은 난간에서 아래를 내다보며 위태롭게 푸시업을 한다. 떨어지고 싶은 것인지 붙잡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관객이 알 수 있는 것은 난간을 붙든 사람의 높고 위태로운 처지 하나뿐이다. 보리는 더 이상 올라갈 곳 없는 정상에 서있다. 내려다볼 곳은 아래뿐인 그곳은 안전한 착지를 위한 어떠한 제동장치도 없다. 손을 놓으면 추락할 뿐이다. 보리에게 있어서 테니스란 그런 것이었다. 승리와 패배, 아니 자신의 승리만이 있는 것. 그는 어떻게 해서든 이번 승리를 쥐어야한다. 그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패배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매켄로 또한 이번 윈블던의 승리가 간절하다. 매너의 스포츠인 테니스계에서 ‘악동’이라고 불리며 손가락질 받는 그에게는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는 일이 보리만큼이나 간절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켄로의 실력보다는 불손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보리에게 쏟아낼 도발적인 말에만 관심이 있다. 매켄로도 이번 윔블던에서 승리를 쥐어야 한다. 폭발적이고 무례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외로운 그는 사랑과 인정이 절실하다. 

  무언가를 성취해 내는 과정, 특히 정상에 서는 과정은 승리를 향한 열망과 그것에 반대하는 혹은 장애가 되는 자신의 무언가를 깎아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보리와 매켄로 또한 그래왔다. 보리는 욱하는 자신의 성격을 도려냈고, 그 자리에 상대를 향해 꽂아 넣는 강력한 스매쉬 한 방과 일상 속 징크스들로 채웠다. 매켄로는 승리와 인정만 남겨둔 채 모든 관계들을 흩어버렸다. 관계들은 계속 그를 스칠 뿐 곁에 머무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게 인생을 깎아 승리를 만들어내던 두 사람은 라커룸에서 처음 마주친다. 

  처음 마주한 두 사람. 가장 차갑거나 가장 뜨거울 두 사람의 만남은 의외의 동류의식이 흐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자신을 본다. 보리는 인생을 걸쳐 감춰온 자신의 끓는 감정을, 매켄로는 자신이 그렇게 되고 싶었던 인정받는 플레이어를 본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위태롭고 외로운 일인지도 잠시만의 눈빛으로 공유한다. 

  영화가 흐를수록 코트 위에는 신사도 악동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저 건너편에서 날아오는 공을 받아치는 한 사람만이 있을 뿐. 위에서 아래로, 보리 혹은 매켄로 한 선수만 비추는 절단된 화면은 절대자의 시선으로 한 사람을 보게 한다. 그 사람은 분명 건너편에서 적이 던져 넘기는 공을 받아치고 있지만, 계속되는 랠리 속에서 어느 순간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냉정하지만 끓고 있는, 끓고 있지만 냉정한 전혀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은 네트 건너에 있는 자신과 끊임없이 공을 주고받는다. 

  매켄로와 보리가 시합을 시작하기 전, 대기하는 장소 위에는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굴욕도 당신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라는 경구가 적혀있다. 한 번의 승리를 목숨처럼 따내고 치열하게 올라온 그들에게 얼마나 무심한 경구인가. 하지만 이 경구는 보리와 매켄로의 시합 안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지켜낸다. 매켄로가 참고 넘긴 한 번의 오심이 인정의 박수로 돌아올 때, 승리를 거머쥔 보리의 무거운 표정에서 두 사람은 승패의 기쁨과 굴욕에서 탈선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리는 베란다에 서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아래가 아닌 너머를 본다. 젊은 나이에 최고의 기록을 남긴 그의 은퇴 후 적적하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한 감정이 그가 바라본 시선에서 전해진다. 매켄로에게 다음의 승리를 물려준 그의 미래는 동이 터오는 저 편처럼 뜨겁다. 미스터 아이스는 다시 감정의 온도를 되찾을 것이고, ‘승리자’의 타이틀을 벗고 인간의 자리로 내려올 것이다. 

  영화는 앞서 “테니스는 인생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말하며 그렇기에 테니스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라고 한다. 냉철한 도끼, 난무하는 단검 같은 승부사들을 우리의 인생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지는 않다. 하지만 삶의 어느 순간 마주해야할 것은 달콤한 승리도, 쓰디쓴 실패도 아니라 그것의 총체인 ‘나’라는 것은 보리와 매켄로처럼 최고를 다투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닌 모두에게 주어진 같은 과업이 아닐까. 그 과업에서 승리를 할지, 패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경구처럼 그것이 다시 삶을 지배하게 하지는 못하게 하는 것이 삶을 걷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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