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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Sep 05. 2018

살아남은 아이

죄를 집어삼킨 아이, 그리고...

  동네에서 작은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는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은 아들 은찬을 사고로 잃었다. 같이 놀러간 친구 ‘기현’(성유빈)을 구하고 죽었다던 아들. 성철은 그런 아들을 의사자로라도 추모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상처를 잘 덮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성철은 아들이 죽은 그 날 이후로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던 기현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부모 없이 당장 월세 갚기가 급급한 처지의 기현을 안쓰럽게 여긴 성철은 그를 아내 모르게 제자로 들인다. 

 당장 먹고 살 수 있도록 기현에게 도배와 장판 까는 일을 가르쳐주는 성철. 훗날 이 일을 알게 된 아내 미숙은 아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아이인 기현에 적대감을 드러내지만, 시간이 갈수록 하나의 상실을 공유하는 세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듯 했다. 기현이 은찬의 죽음과 관련되어있던 결이 다른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기 전까지.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죄를 집어삼킨 아이 기현과 그로부터 상처를 위로받고 다시 배신당한 절망 속에 놓인 성철과 미숙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 죄를 집어삼킨 아이, 그리고...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 중에서, <입동>의 부부도 아이를 잃었다. 소설의 시작과 끝은 도배를 하는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처참하게 무너진 마음을 얇은 도배지 한 장으로 겨우 붙이려는 둘의 모습은 한 없이 작고, 가엾고, 안쓰럽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성철과 미숙이 하는 일도 그런 일이다. 집의 내부를 긁어내고 다시 깔고 바르는 일. 영화의 시작 성철이 무심하게 뜯어내는 공간은 아들 은찬의 죽음으로 헐어져버린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성철과 미숙이 그리는 아들의 죽음 다음의 모습은 서로 다르다. 성철은 집을 뜯어내고 벽을 바르던 것처럼 은찬의 죽음을 ‘의사자’라는 이름으로 새로 바르려고 한다. 반면, 미숙은 아들의 죽음을 잊기 위해 죽음 다음의 일들을 계속해서 진행해나간다. 둘째를 가지려고 한다던가, 은찬의 방을 치운다던가. 미숙에게 있어서 은찬의 죽음은 너무 뜨거워서 견딜 수 없는 쇠 못 같다. 그래서 미숙은 절룩이며 미래로 도망치려 하고, 성철은 못을 두드리며 제대로 가슴에 박으려 한다. 

  아들의 죽음을 대하는 둘의 차이는 기현을 맞닥뜨리며 그 폭은 반대로 더 벌어진다. 기현을 두고 미숙은 ‘아들을 죽인 애’라고 말하고 성철은 ‘아들이 살린 아이’라고 말한다. 기현의 존재는 아들의 죽음 이후의 이들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한 순간에 드러낸다. 적극적으로 상실 이후의 삶을 향해 움직이던 미숙은 여전히 ‘상실’의 정 중앙에 있었고, 성철은 상실을 외부의 것에 투영해서 위로해 나가고 있었다. ‘의사자’라던가, ‘기현’으로. 영화의 초반과 중반 그리고 후반으로 가면서 ‘아들의 상실’에 대처하는 둘의 자세는 아들의 죽음을 축으로 한 엇갈려 움직이는 두 개의 진자처럼 끝에서 끝으로 이동한다. 

  기현은 위태롭다. 엄마는 도망쳤고, 아빠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은찬’의 일로 학교마저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었다. 홀로 생계를 지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구원자처럼 성철을 만난다. 악연으로 끝난 치킨집 사장님은 기현을 향해 침을 뱉듯 마지막 말을 남긴다. “양심도 없는 놈이 운은 좋네.” 영화 속에서 지나가는 한 마디지만, 기현의 상태를 일축하며, 기현의 죄책감을 가장 깊숙이 찌르는 말이다. 

  기현은 죄를 품고 있는 아이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양심을 접고 성철, 미숙 부부 앞에서 웃으며 은찬의 자리를 대신한다. 일을 배우는 제자이면서, 한 편으로는 은찬의 자리를 대신하는 아들이 살린 아이. 부부는 기현이 하나씩 자신의 삶을 바로잡아 나가는 것을 보면서 성장을 지켜보는 뿌듯함을 잠시 느끼기도 했었다. 부부가 상실의 상처를 기현을 통해서 아물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기현에겐 참을 수 없는 매슥거림이 올라온다. 은찬을 죽이고도 양심 없이 은찬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혐오와, 부부가 따뜻한 밥 한 술을 떠먹여 줄 때마다 생각나는 자신의 죄 때문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계속해서 죄를 한 움큼씩 집어삼키고 있다. 기현이 자격증을 딴 기념으로 성철, 미숙과 함께 간 소풍, 세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기현의 죄책감은 극에 달한다. 그는 결국 그날 먹은 모든 걸 토해내고, 자신이 품었던 비밀마저 토해낸다. 

  자신들이 몇 달을 보살폈던 기현이 아들이 살린 아이가 아니라, 아들을 죽인 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부부는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최대한 침착하게 진실을 되찾으려하지만, 아들이 죽던 날 함께 있던 친구들이 그들을 돕지 않는다. 은찬과 가장 친했던 친구 준영마저도 자신들에게 화살이 돌아갈까 진실을 함구한다. 이때 기현은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고 죄의 무게를 지고 있는 한 사람이 된다. 영화는 인물들을 절대 선이나 절대 악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 그들은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면을 달리하며, 달라진 면들은 관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기현의 진실을 알게 된 부부는 다시 정 반대로 움직이게 된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가장 뜨거운 태초의 사건, 은찬이 죽었던 강가에서 영화의 가장 극적인 엔딩이 벌어진다. 성철은 기현을 자기 손으로 죽이려하고, 기현은 그런 성철을 굳이 말리려 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차마 죽이지 못하고 목을 졸랐던 손을 놓는 성철을 뒤로 한 채 기현은 은찬이 죽었던 강가로 내달린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의 몸이 돌을 잔뜩 집어넣은 채로 물에 뛰어든다. 이 때 집어넣은 것은 그가 지금껏 쌓아두었던 죄의 무게, 양심의 무게였을 것이다. 

  미숙은 강에 뛰어든 기현을 살리려 가장 먼저 강물에 몸을 던진다. 진실 앞에서 성철이 재 정의된 죽음에 대한 분노에 초점을 맞췄다면, 미숙은 지금 남아있는 기현이라는 생명과 그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게 기현을 위해 뛰어든 성철과 미숙은 기현을 구해낸다. 강물 속에서 세 사람이 허우적대면서 기현이 주머니에 잔뜩 담은 돌은 스르륵 물에 녹듯 쏟아져 나간다. 살기 위해서 부둥켜안은 세 사람이 죽음의 공간에서 삶을 구해낸 모습이다. 그리고 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 아이 기현과 함께 치유와 배신의 시간을 보냈던 부부는 그의 생명을 구함으로서 더 크고 처절한 용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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