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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Nov 19. 2018

라라랜드

꿈을 위한 사랑의 노래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도시 LA. 그 곳에서 ‘미아’(엠마 스톤)는 영화배우를 꿈꾸며 살아간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창문이 바라다 보이는 할리우드 세트 안에 있는 커피숍이다. 그녀는 <카사블랑카>의 잉그리드 버그만을 벽지로 발라 놓기도 했다. 이렇게 자신의 꿈에 닿기 위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꿈으로 조율해놨지만, 어쩐지 오디션에서는 계속해서 낙방한다. 그런 미아에게 친구들은 말한다. LA에서 벌어지는 파티들을 다녀보다 보면 너에게 날개를 달아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미아는 망설인다. 자신의 꿈은 그렇게 어쩌다 줍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우연히 파티를 찾은 그 곳에서 그녀의 삶을 뒤흔들 사랑을 만나게 된다. 

  미아가 꿈의 방향을 잃은 사람이었다면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꿈에 눈이 먼 사람이다. 집안에 지불하지 못한 고지서가 쌓여가도 그에게는 정통 재즈를 향한 꿈이 있다. 그런 그에게 낭만이라는 말을 나쁘게 쓰는 그의 누나 같은 사람은 얼른 그의 삶에서 멀리 내쫓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꿈을 좇는 그도 현실은 그저 레스토랑에서 정해진 곡을 쳐야만 하는 신세다. 레스토랑 지배인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곡을 친 어느 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내쫓긴 그 날. 미아는 군중 속에서 빛나는 세바스찬을 발견했고, 세바스찬은 그를 알아봐 준 그녀를 스쳐갔다.

  뮤지컬 영화인 <라라랜드>는 영화 그 자체로도 노래와 형식이 같다. 계속해서 Reprise(음악에서의 반복부분)되는 순간들이 영화 속에 존재한다. 미아가 세바스찬을 발견하는 순간은 이어지는 계절에서 반복된다. 그 때 이 만남은 변주되어 있다. 미아는 친구들이 졸라서야 겨우 갔던 파티를 제 발로  다니고 있었고, 세바스찬은 그 파티에서 히트곡을 불러주는 밴드의 키보드로 활동하고 있었다. 꿈을 좇다 정체된 두 사람. 이번 만남에서 둘은 ‘사랑’이라는 변주를 한다. 영화를 강렬하게 열었던 오프닝 장면도 이 순간을 예고한다. 노란 옷을 입은 여성과 말쑥한 정장을 입은 남자는 노래한다. “내일은 다른 해가 뜰 거야”라고. LA의 마법 같은 보랏빛 노을을 나눈 두 사람이 맞이한 내일은 사랑이라는 해가 떠있고, 길을 걷는 걸음은 밝고 가볍다. 

  미아가 2차 오디션 제의를 받게 된 것을 알게 된 세바스찬. 그는 작품 연구차 함께 리알토 극장에서 옛 영화를 보자고 말한다. 그렇게 함께 영화를 보게 될 생각에 들떴던 미아. 하지만 그 날은 남자친구와 그의 형 내외와의 저녁 선약이 있었다. 하지만 미아는 저녁 약속자리를 박차고 리알토 극장으로 향한다. 그렇게 그녀는 타인이 정해줄 안정된 미래가 아닌 자신이 정한 뜨거운 꿈을 향해 달린다. 리알토 극장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이 만나 손이 닿는 순간, 타버린 필름이 그녀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세바스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줄 군중 속의 ‘그 사람’이라는 것도. 

  세바스찬이 믿고 지지해주는 1인극이라는 꿈에 몰두하는 미아. 세바스찬을 만난 후, 그녀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에서 ‘1인극’이라는 명확한 꿈의 형태를 찾아낸다. 반면, 그녀의 꿈을 견인한 세바스찬은 미아와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길을 잃는다. 사랑을 지속하고 싶은 그는 재즈 클럽을 차리겠다는 꿈을 잠시 접고 돈을 벌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그가 꿈에서 현실로 뛰어든 것은 잠시 뿐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 미아와 세바스찬의 공간은 다른 빛으로 물들어 분리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하나의 빛 아래서 함께 부른 마지막 노래, 'City of the stars (reprise)'에서 세바스찬은 ‘난 이 감정에 더 머물고 싶다’고 말하고, 미아는 ‘이것보다 더 밝게 빛날 수는 없을 거야’라고 노래한다. 하나의 순간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시선, 세바스찬과 미아는 이 때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다가온 계절, 미아는 자신의 1인극 준비로 정신이 없고, 세바스찬은 밴드의 인기에 이곳 저곳으로 투어를 다니고 있다. 각자의 꿈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무렵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묻는다. “왜 클럽은 안해?”라고. 그때 세바스찬은 고정된 자신의 현실에서 불안정한 꿈으로 빠져나가기를 두려워한다. 그런 그에게 미아는 “당신 덕분에 나도 재즈가 좋아졌어, 당신이 재즈에 대한 열정이 큰 만큼 사람들이 찾아 줄거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열정의 끌리거든, 자신이 잊은걸 상기시켜주니까.”라며 경종을 울리지만, 세바스찬의 귀까지 닿지 않는다. 미아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꿈에 눈이 멀어 마음이 이글이글 끓던 남자를 찾았지만 그 남자는 이미 철이 들었다며 사랑의 자리에서도 멀리 떠났다. 

  결국 두 사람에게는 경보가 울린다. 더 큰 불이 나기 전에 울리는 것이 화제경보라고 하지만, 그것도 이미 속에 든 소중한 것이 다 타버리고서야 울리는 것이다. 사랑에서 눈을 돌린지 한참 지난 두 사람은 그날이 되어서야 타버린 사랑을 마주한다. 

  그리고 노래에 후렴구가 찾아오듯이 세바스찬에게도 미아와 같은 상황이 제시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1인극 공연 날과 밴드의 사진 촬영일이 겹친 것이다. 그 때 세바스찬은 안정된 미래를 선택하며 미아와 처음 만났던 날의 곡을 천천히 눌러 쳐본다. 그가 그녀를 놓칠 때마다 치던 이 곡은 그가 계속해서 반복해가며 연주하며 사랑을 놓친 순간을 되뇌게 했을 것이다. 한 번 친 건반의 음은 다시 담을 수가 없다. 다음 음으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수밖에. 처음 그 자리로 다시 되돌아오는 그의 노래처럼 그는 그녀 없는 지금으로 다시 돌아온다. 

  세바스찬이 꿈을 포기하고 떠난 미아를 다시 되돌려 오디션을 보게 한 날. 미아는 오디션에서 배우였던 자신의 이모의 이야기로 시작해 꿈을 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에는 ‘지금까지 없던 색깔을 보기 위한 열쇠는 조금 미치는 것’이라는 가사가 있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보랏빛 하늘을 보았던 그 순간. 꿈과 사랑이 동시에 부풀어 올랐던 순간. 그리고 그것에 미쳐 달려왔던 지금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미쳤던 순간이 지난 한 낮의 천문대는 휑하기 그지없다. 사랑은 그날의 노을처럼 흔적만 남기고 휘발되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사랑이 자취를 감추었더라도, 누군가의 꿈에 자신과의 사랑이 녹아 있는 모습을 마주하면 사랑이 고였던 자리가 꽤나 깊었다는 걸 알게 된다.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 'Seb’s'에 들어선 미아처럼. 영화는 세바스찬이 자신의 테마를 치는 것으로 시작해 회한의 감정을 황홀한 판타지로 엮어 쏟아낸다. 판타지가 빛날수록 마지막 음을 치는 세바스찬과 그 음악을 듣고 있는 미아의 회한은 더 깊어진다. 끝내 각자의 꿈을 이룬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 짓는다. 이 미소로 둘은 함께 견인했던 각자의 꿈을 이룬 사랑했던 사람의 어깨를 도닥여준다. 

  꿈과 사랑이 황홀하게 버무려진 영화 <라라랜드>는 꿈을 좇는 사람들을 위해 보내는 사랑의 노래이다. 꿈을 이룬 두 사람이 사랑은 이루지 못했다는 일생의 회한이 한 편으로는 무겁다. 하지만 그들의 꿈 안에는 두 사람이 뜨겁게 사랑했던 순간이 녹아있다. 사랑을 녹여 빚어낸 꿈이라는 형상. 그 안에서 그들은 언제고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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