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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Nov 29. 2018

귤과 영화

영화를 보는 일, 영화를 쓰는 일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움직임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귤 상자가 집에 들어오는 것. 우리 집은 벌써 두 번째 귤 상자가 들어왔다. 집 안에서는 웬만하면 반팔에 츄리닝을 고수하는 나는 팔을 싸매고 차가운 베란다로 나가 귤을 고른다. 껍질이 얇고 단단한 귤이 제일로 내 취향에 맞지만, 그렇지 않은 귤이더라도 껍질을 까보면 맛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때에는 곯았지만 남은 부분이 아까워 까먹었는데 그 귤이 제일이기도 하다. 

  난데없는 귤 이야기. 나에게 영화를 보는 일이란 이렇게 무언가를 섭취하는 일이다. 비슷한 맛일지라도 어떤 건 더 새콤해서 맛있고 어떤 건 더 달콤해서 맛있다. 아무 맛도 없는 귤도 있다는 것이 이 영화라는 귤 상자의 매력이기도 하다. 귤을 까먹는 일이란 나름 단단하게 감싼 껍질을 손쉽게 벗겨내 단 부분을 요리 조리 떼어먹는 일이다. 이것처럼 나도 영화라는 세계에 만 원 정도의 영화표로 영화로의 문턱을 나름 가벼운 몸짓으로 넘어 들어가 하얀 스크린에 쏟아지는 이야기를 취향 따라 떼어먹는다. 한 알 한 알 아껴 먹기도 하고, 너무 좋아서 통째로 입안에 털어 넣기도 한다. 어떤 영화는 너무 맛있어서 당분간은 같은 영화만 질리도록 먹기도 하고. 그렇게 먹다보면 아는 맛은 아는 대로 맛있고, 이 영화에 이런 것도 들어갔냐며 숨은 맛을 찾는 재미도 있다. 이렇게 나는 영화를 먹고 자란다. 

  영화는 책장을 넘기는 것과도 달라서, 불이 꺼지고 하얀 스크린과 마주할 때면 나는 지금 첫 발을 디딘 세계에서 절대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안도한다. 많은 것에 접속해봤지만, 영화로의 접속이 가장 나를 홀린다. 가보지 못한 세계로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곳엔 공간이 있고, 사람이 있고, 삶이 있으며, 예술이 있다. 사람이 하얀 곳에 그려낸 것 중에 가장 많은 것을 효과적으로 그려낸 것이 있다면 그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세계의 호흡에 몸을 담고 있노라면 가끔 내가 영화의 시간에 녹아드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영화도 몸에게서 ‘혼’을 빼앗는 매혹적인 매체다.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 잠깐 ‘남’이 되고 오면, 그 감상은 무엇이며,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해 골몰한다. 잠시 놓았던 이성이 몰아서 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럴 때면 나의 수집욕구가 함께 발동한다. 스크린에 2시간가량 어린 빛이 그저 빛으로만 남지 않았다는 것을 기록하고 싶어진다. 탐험기를 쓰듯 그 세계를 최대한 그려내려 애쓴다. 그곳의 풍경은 어땠고, 언어는 어땠으며, 그들은 무슨 춤을 추고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그들에게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지. 그 세계를 본 많은 제 3자 떠버리들의 말이 될 지라도, 나는 나의 탐험기를 쓴다. 언젠가 그곳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내가 본 ‘나의 풍경’을 전해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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