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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Nov 16. 2018

그 시절 내가 사랑한 #①. ♪

하이틴 #3. 그 시절 내가 사랑한 ‘하이틴 뮤지컬’

- 하이틴#3. 그 시절 내가 사랑한 #①. ♪     


  ‘중 2’,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그 시기에 가장 많이 보고 들은 말이 아니었나 싶다. 가정, 도덕, 국어, 심지어 과학 교과서에서까지. 사춘기가 등장하는 모든 곳에서 ‘질풍노도’라는 말을 마주했다. 그래,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질풍노도를 달리게 된 것은. 그 즈음 나는 손에 쏙 들어오는 MP3가 있었고 그 안에는 국가 공인의 마약 ‘음악’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때부터 귀를 음악으로 막고 살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내 취향의 노래들이 랜덤 플레이 되고 있다. 귀에서 책상까지의 거리, 그 동안 내가 자라며 세상에 내어준 거리는 딱 이정도인가보다. 여전히 나는 음악을 피복처럼 입고 산다. 그런 나에게 ‘뮤지컬’과 ‘뮤지컬 영화’란 얼마나 큰 파장이었을까. 이 글은 ‘그 시절, 나의 눈과 귀를 지배했던’ 하이틴 뮤지컬에 관한 이야기이다.     


 


- 그 시절 내가 사랑한 ‘하이틴 뮤지컬’ <하이스쿨 뮤지컬> & <글리>     


  나는 청소년이 되기 전까지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따로 학습하진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동안 봐왔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은 다들 노래를 하고 있었으니까. 노래는 만화에서나 부르는 줄 알았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실사 영화로는 뮤지컬을 접한 적이 없었고, 음악수업은 1학기에는 국악을 2학기에는 클래식을 배우곤 했었으니까. 그 사이에 ‘뮤지컬’이라는 이름을 따로 접할 일이 없었다. 내 취향의 맞는 음악을 나름의 엄격한 기준으로 선별해 MP3에 담고 그것을 성물처럼 모시고 들으며 질풍노도를 달리고 있을 때, 나는 <하이스쿨 뮤지컬>을 만났다.    


<하이스쿨 뮤지컬> 스틸컷


  새해를 맞이하는 리조트의 밤. 부모들은 모두 파티에 갈 것에 설레고, ‘트로이’(잭 에프론)와 ‘가브리엘라’(바네사 허진스)는 그런 부모의 성화에 못내 십대들의 파티에 가게 된다. 그 곳에서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로 함께 듀엣을 부르고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다. 그 때 부른 노래가 'Start of Something New'다. 앳된 두 사람이 앳된 목소리로 앳된 사랑을 부른 이 노래. 열일곱의 나는 첫 노래부터 이 영화에 운명처럼 빨려들었다. 

두 사람은 가브리엘라가 트로이의 학교에 전학을 오면서 재회한다. 둘이 다니는 학교에는 ‘하나의 서클만 해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하는데, 농구부의 트로이와 과학반의 가브리엘라가 이 학풍을 어기고 연극부의 오디션을 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단연 잘 빠진 음악들이다. 마지막에 트로이와 가브리엘라가 부르는 ‘Breaking Free'는 <하이스쿨 뮤지컬>을 3편까지 꼬빡 나올 때마다 챙겨보고, 닳도록 다시 본 지금도 종종 듣고는 한다. 한번 박힌 취향은 쉽게 옮겨가지 않는다. 취향은 다른 것들을 흡수하며 영역을 넓히는 것 같다.    

 

<글리> 스틸컷


  그렇게 나는 열아홉 살. 나의 취향을 더 깊고 넓게 파헤쳐줄 미국 드라마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글리>이다. 스물을 앞둔 그 때는 내 앞에 놓일 거대한 자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자유에는 빼놓을 수 없는 과업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나의 소수성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그간 학업이라는 굴레에 끼워 놓고 미뤄두었던 나의 정체성을 찾는 일. 그 일이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일지는 몰랐지만, 그즈음 나는 나를 자유에 던져놓고 뒹굴면서 껍데기 없는 알맹이의 나를 찾고 싶었다. 

  <글리>는 명확한 대결구도를 그어놓고 시작한다. 이제 막 신생한 합창클럽과 잘 나가고 있는 치어리딩 클럽 간의 대결구도.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간 보았던 전형적인 파벌이 존재한다. 하지만 <글리>는 그간의 하이틴 설정들을 격파하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풀어간다. 장애인, 성소수자, 아시안, 사회성이 떨어지는, 규격적인 신체를 가지지 않은, 소수자들이 모인 글리클럽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이 드라마는 강한 소수성을 표출한다. 

  시즌을 더해갈수록 서로 돌려가면서 사귀는 막장스토리가 이어지지만, 매 화마다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당시 시대가 당면한 다양한 청소년 이슈들을 다룬다. 특히 다양한 소수자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미식축구부의 주장으로 고정된 남성성의 상징이었던 ‘핀’(코리 몬테이즈)이 레이디 가가 코스튬을 입고, 게이인 친구를 도우며, ‘시선’에서 탈피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각자의 사회적, 신체적 장애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벗어나거나 인정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또 매번 지역대회에 나오는 팀들도 노인합창단, 수화합창단, 휠체어 안무를 추는 장애인 합창단처럼 예술 앞에서 모두 대등하게 경쟁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야기는 여기저기로 막장으로 튀어가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사회상, 시대상, 인물상들을 전시했던 <글리>는 당시 나의 최애 드라마였다. 나에게는 미국에서 출발한 그 어떤 매체들보다 자유로움을 뿜어내어 사상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게 했었다. 시즌 6까지 시리즈가 긴만큼 나의 20대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해왔던 드라마이기도 한 <글리>. 요즘 들어 매 시즌, 매 화 마다 ‘다양성’을 노래하던 그들이 그립다.      


<글리> 스틸컷


  하이틴과 뮤지컬을 접붙일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선택은 탁월했다. 삶으로 뻗어나가는 청소년의 에너지와 뮤지컬이라는 극형식이 가진 폭발적인 힘. 덕분에 우리의 눈과 귀는 그들의 밝은 에너지로 두근거린다. 열일곱, 열아홉 즈음에는 한 해를 넘어설 때마다 ‘자유’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히는 것 같았다. 그 시절 만난 ‘하이틴 뮤지컬’과 그들이 부르는 자유로운 청춘의 노래는 나를 띄워 구름을 걷게 해주었다. 물론 잠시였지만. 화면을 넘어 전해오는 그들의 환상적인 하이틴 에너지는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좁다란 낭떠러지 길로 졸아들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 다시금 마음의 날개를 달아준다. 이런 꿈을 꾸던 ‘너’도 있었다고. 하늘로 팔을 뻗고 소리 높여 불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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