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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pr 19. 2017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못난 나를 이해하는 느린 여행

 


주인공 선호는 한때는 도시로 나가 대학물, 도시물 먹으며 살았지만 지금은 귀향해 부모님과 함께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농사일을 하며 지냅니다. 꿈꿨던 시인의 삶을 지역 문학모임에 나가면서 근근이 이어가고 있지만, 부모님 눈에는 그저 술 마시며 돌아다니는 혼기가 차다 못해 넘친 천덕꾸러기 아들이죠.

 선호도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를 갖다 판다고 소리치면서, 뒤에 따다 붙이는 부모님의 건강, 자신의 져가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 모두 소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은 다 자신의 처지를 되새김질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인의 문학상 축하모임에서 술을 진탕 마신 선호가 해가 중천일 때 방에서 기어 나오자, 아버지는 “소보다도 못한 놈아!”라고 꾸짖습니다. 어려서부터 소를 먹이면서 자라온, 소에 매인 인생이었던 선호는 그 말을 듣고, 새벽에 소를 트럭에 싣고 소를 팔아버리러 우시장이 있는 횡성으로 떠납니다.     




- 소만도 못한 놈

 영화는 소보다 못한 선호가, 소와 함께 여행하며 생기는 일들을 담습니다. 선호의 처지는 그가 팔러 나온 소와도 같습니다. 횡성에 가는 길에 소가 멀미를 하며 힘들어 하자 소를 잠시 내려놓고 소를 정돈시킵니다. 그러면서 윤기가 좌르르 흘러도 모자른 세상에 침에, 눈물에, 똥에 이게 다 뭐냐고 넋두리 같은 잔소리를 소에게 합니다. 영화 초반부터 선호는 약하고 느리고 고집 센, 그리고 과학 영농 시대에 뒤떨어진 ‘소‘에게 세상에서 뒤쳐진 자신을 투영해서 꾸짖고 어루만집니다.

 팔려던 소가 막상 생각보다 낮은 가격을 받게 되니 일 잘하고 영특한 소인데 라고 하면서 소를 팔지 못합니다. 애초에 팔 생각이 없기도 한 선호였지만, 이 말들을 선호에게 투영해 보면 그가 자신의 처지에 괴로워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바닥에 던져진 인생이라고 생각해 짓뭉개려고 보니, 그 깨어진 모습도 소중했던 것이지요. 선호는 소를 팔러 청도를 향하면서 그리고 어쩌다보니 하게 된 소와의 여행을 통해서 그 가치를 알아갑니다.

 소를 팔러가는 길에, 7년 전 헤어진 옛 연인 현수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갑작스럽게 남편이 사고로 죽게 되었고, 장례를 치르고 있는 중이라는 건데요. 현수와의 만남으로 선호의 과거가 뭍으로 올라옵니다. 현수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선호는 서로 친하게 지냈던 단짝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헤어진 현수가 그녀의 남편과 결혼해버리자 선호는 과거를 질투로 칠한 채 살고 있었는데요. 선호는 과부가 된 현수와 사랑과 질투를 오가며 현재 자신의 삶에 남은 미련과 질투의 그늘을 보게 됩니다.

 어느새 현수도 소와 선호의 여행의 일부가 되고, 현수는 소에게 죽은 남편의 별명이었던 피터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선호는 처음에 그 일에 거부감을 드러내지만, 피터가 된 소는 어긋나 버린 세 사람의 관계를 정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소는 그저 죽어버린 피터의 이름만 가진 채 둘 사이에 묵직하게 서있을 뿐이지만, 균형을 잃은 세 사람의 관계에 중심을 잡아주며 피터라는 존재를 곁에서 계속 상기시킵니다. 둘은 각자 피터와 얽힌 과거를 소와 함께 여행하며 정리하게 됩니다.

 선호가 여행의 끝을 결정하는 계기는 꿈의 형태로 전해집니다. 꿈 속 동자스님이 “미워할 일을 마음에 비추지 않으면 미워하지도 않게 된다.” 라고 했던 말이나, 그가 자신과 얽힌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절, ‘맙소사’를 태워버리는 일은 그가 지난 세월동안 쌓았던 미련, 질투, 애증과 같은 묵은 감정들을 태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하얀 꽃은 묵은 감정들에 묻혀있던 현재의 삶에 대한 가치였다고 생각합니다.    



  

- 그게 그거지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사는 ‘그게 그거지’입니다. ‘맙소사’의 스님이나, 현수와 선호가 찾아간 동네 술집에서 아주머니도 같은 말을 하는데요. ‘그게 그거지’ 라는 말이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흘러가라는 말 같기도 하고, 쩨쩨하게 이것저것 따지지 말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선호의 상황은 영화 처음이나 끝의 외적인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갈다 뛰쳐나왔던 밭을 소와 함께 갈면서 영화가 끝나게 되는데요. 참다못해 뛰쳐나온 일탈이 인생의 앙금을 풀어내긴 했지만 일탈 후 맞이하는 일상은 전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면서, 모든 건 마음 속 거울에 따른 것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대사로도 다시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 못난 나를 이해하는 여정

 선호는 일상과 그 속의 자신의 문제를 현실에서 가장 먼 곳에서 해결하고 돌아옵니다. 그 옆에는 '소'라는 느리지만 이해심 많은 존재가 곁을 우직하게 지키고 있었지요. 그가 내내 끌고 다녔던 소는 ‘현재의 자신‘의 상처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이 무르익을 쯤, 현수는 선호에게 “너는 소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엄청 좋아하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과 대화 중에도 계속 소를 보러 갔던 선호는 못난 나의 현재의 처지, 그리고 내가 묻어왔던 앙금들을 돌보면서 자신을 이해하고 치유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처지, 심지어 나 자신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묻어둔 나의 티끌들은 나비효과처럼 지금 나의 인생을 좀 먹고 가끔 불쑥불쑥 나타나 나를 흔들어 놓기도 하는데요. 이런 못난 나를 이해하고 나와 나를 중심으로 한 주변의 관계들, 환경들의 소중함은 그 상처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묘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소와 함께하는 길고 느린 여행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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