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옹 Apr 16. 2017

Wall - E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순수한 감정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 중에서도 픽사 애니매이션들을 참 좋아한다. 2008년에 나온 영화라 라푼젤이 등장한 이후로는 n차 관람을 이어오진 않았는데, 팟캐스트 할 영화로 선정되면서 최근에 다시 보게 되었다. 여전히 명작이었고, 군더더기 없는 사랑스러운 스토리였다.      


 인간들이 떠나가고 홀로 지구에 남아 지구를 청소하고 있는 로봇 Wall - E, 영화 초반에는 폐허가 된 지구 안에서 묵묵히, 그리고 외롭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Wall - E의 일상을 그린다. 영화를 보다보면 그에게 로봇이 아닌 인물로서 이입하게 되는데, 그의 인간적인 감성에 푹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 자신의 공간, 그리고 그 안을 채운 수집품이라고 생각한다. 수집이라는 행위 자체가 본디 Wall - E에게 입력된 것이 아니다. 홀로 학습하며 생긴 주관을 근거로 ‘마음에 드는’ 것들을 모아 공간을 소소하게 채워간다. 그 기준은 인간의 관습적인 기준과는 다르지만, 주관과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 인간적인 모습이라 생각한다.

 Wall - E가 사랑을 배우고, 동경하게 되는 계기는 지구인들이 놓고 갔던 수많은 사랑이야기들 때문이다. ‘비디오’를 통해서 본 옛 뮤지컬 영화의 유치하지만 그만큼 순수한 사랑노래들은 Wall - E만큼이나 우리가 동경하는 과거이다. 사랑과 낭만에, 그리고 그것을 동경하는 것조차 바쁜 우리들은 Wall - E의 눈을 통해서 마음껏 동경하고 푹 빠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인물이나, 사람형 캐릭터를 통해서 보여줬다면 Wall - E가 발견했던 비디오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가장 먼 미래에, 인간에서 가장 먼, 그것도 정사각형의 직선으로 대표되는 캐릭터에 순수한 감정을 부여하면서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이브가 등장하면서 Wall - E의 지고지순한 순애보가 시작된다. 이브라는 캐릭터는 Wall - E의 직선의 정사각형과는 다르게 유선형의 매끈한 로봇이다. 이 둘의 첫 만남은 외형적 차이만큼이나 감성적 격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아보였다. Wall - E의 유일한 친구 바퀴벌레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Wall - E는 한걸음 더 다가간다. 이브가 탐사에 좌절을 겪고 Wall - E가 위로해주는 상황에서, 둘은 가까워지고 모래폭풍을 피해 Wall - E의 공간으로 들어오게 된다.

 Wall - E는 이브를 좋아하는 마음에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이 찾아낸 수집품들을 보여주며 둘은 가까워지는데, 라이터 불을 켜고 사랑노래가 들리며 Wall - E의 눈에 불과, 이브의 모습이 차례로 담기는 모습은 Wall - E가 이브에게 얼마나 빠져있는지, 그 짙은 감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이 장면 전에도 Wall - E의 눈에 별이 담기는 모습 등 Wall - E의 눈에 풍경, 캐릭터가 담기는 모습이 종종 나오는데, 눈에 비친 풍경은 캐릭터가 보고 느끼고 있는 감성을 대사 없이도 강렬하게 그리고 낭만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렇듯 영화는 무성영화의 화법을 취하고 있는데, 캐릭터들이 인물형 캐릭터가 아니다 보니, 부족한 표정을 대신해 기계음과 목소리를 넣었다. 두 로봇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소통하는 모습으로 표현의 한계가 보완되고 감성을 더 짙고 애틋하게 전달해준다.      


 이브가 본래의 우주크루즈로 다시 돌아가자 Wall - E도 이브를 따라 크루즈에 따라가게 된다. 크루즈의 인간들은 비만의 아기와 같은 모습으로 로봇침대에 누워서 다녔으며 자신의 앞의 모니터를 통해서만 소통하고 있었다. 모든 행동을 로봇에 의지한 채 살아남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변화없음(Unchaged)를 이상으로 삼고 세기를 거쳐 살아온 사람들이 Wall - E의 등장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변화를 맞는 것은 Wall - E와 같은 로봇들이다. 그곳의 로봇들은 정해진 선을 따라 움직여왔지만, Wall - E를 청소하기 위해서 청소로봇 MO가 그 선 밖으로 나온다. 이 외에도 선장실 지킴이 로봇도 Wall - E를 통해서 상하운동이 아닌 손가락을 까딱여 인사를 하는 것을 배우기도 한다. 사람들 또한 Wall - E를 통해서 침대와 같은 이동수단 밖, 그리고 모니터 밖의 세상을 보게 된다. 정해진 일상을 수행하며 변함없는 삶을 유지하고 있는 크루즈를 틀 밖의 삶으로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과 의미들을 몸소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크루즈의 변화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고 재밌었던 장면은, 고장 난 로봇들이 인정받는 과정이었다. 픽사가 토이스토리 1에서부터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되어지는데, 고장나거나, 부족한, 혹은 장애를 가진 캐릭터들이 환골탈태하는 해피엔딩이 아닌, 그들의 삶 안에서 주어진 상태에 적응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점을 여러 영화들에서 짧게나마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Wall - E>에서도 고장 난 친구들이 크루즈 내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는 Auto에 대항하고 영화 끝까지 고쳐지지 않은 상태로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마음에 남는 키워드는 ‘살아남기’와 ‘살아가기’였다. 영화의 인간의 상황은 단일기업이 전 지구의 권력이 된 상황에서 과소비를 통해서 황폐한 환경을 맞게 된다. 그 상황에서 인류는 ‘살아남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몇 세기를 살아왔다. 

 ‘살아남기’라는 선택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생활을 고착화시켜서 현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단일 권력이 눈에 들어왔다. 크루즈 이전에도, 크루즈 안에서도 단일 권력이 ‘안정’을 위해 모두를 관리하고, 사람들은 살아남기를 위해서 그에 적응했다. ‘살아가기’에는 각자의 주관과 그들 사이의 소통, 관계를 바탕으로 결과를 지향하고 유지하는 것이 아닌 과정을 느끼는 것이다. 과정은 가변적이며, 개척해 나아가는 것이며 그렇기에 영화 속 캡틴이 디딘 한 걸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다소 코믹스럽지만 웅장한 음악으로 보여준 것 같다. 

 나는 살아가는 삶보단 살아남기 위해서 옹송그리며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굽은 등이 한 번에 펴지진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등이 굽었다는 걸 인식하고 활짝 피고 살아갈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전체관람가의 애니메이션에서 많은 요소들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엮어낸, 그리고 계속해서 내고 있는 픽사에게 존경과 감사를 느끼게 하는 재관람이었다. 영화의 말미에 진하게 남아있는 낭만과 사랑의 감정은 웬만한 실사영화들보다 오래갔다. 영화 <Wall - E>는 언젠가 살아가다(혹은 살아남다)가 마음이 지쳤을 때, 꺼내어보고 마음에 마지막 남은 순수함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본 투 비 블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