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옹 Nov 20. 2018

영주

사람, 구하죠?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주’(김향기)의 부모는 졸음운전 트럭에 치여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열아홉 영주는 아직 학생인 동생 ‘영인’(탕준상)을 돌보는 가장이 된다. 영주는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고 이제는 자신이 엄마라며, 영주 가족이 살던 집을 팔려고 하는 고모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린애 아니라구요, 엄마 따위 필요 없어요.” 당당하게 소리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지만, 막막한 사정은 변한 것이 없다. 일용직을 전전하는 성인을 목전에 두고 있는 아직은 어린 가장. 영주 자신도 이 집을 지켜낼 자신이 없다. 

  그러던 중 동생 영인이 사고를 친다. 피해자 쪽에서 요구한 합의금은 300만원. 사이가 틀어진 고모는 돈을 주지 않고, 자신을 보장해줄 직장도 신원도 변변찮은 상황. 영주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던 신용대출에서도 사기를 맞으며 위기에 처한다. 마지막 남은 가족의 터, 그리고 동생의 미래와 죄의 값 사이에서 영주는 자신에 닥친 재앙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 사람, 구하죠?     


  영주가 찾아간 곳은 졸음운전으로 자신들의 부모를 죽인 가해자의 집이었다. 가해자 ‘상문’(유재명)은 그 사건으로 징역을 살다 나왔다. 그리고 그 후로도 자신이 저지를 죄의 무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두부가게 사장이다. ‘향숙’(김호정)은 그의 곁에서 함께 가게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영주는 절박한 심정 반, 복수의 심정 반으로 두부 가게의 아르바이트 구인광고를 보고 상문에게 말한다. “사람, 구하죠?” 그렇게 하나의 상실을 가진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났다. 서로를 구하기 위해서. 

  영화 <영주>는 피해자와 가해자, 누구 하나의 편을 들지 않는다. ‘죗값’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로 동등하게 그려낸다. 상문과 향숙 부부는 두부와 만두를 빚는 사람이다. 두부는 흔히 죄를 씻는 목적으로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상문은 그 두부를 매일같이 직접 쑤고 빚어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죄를 결코 씻어 낼 수가 없다. 징역을 살고 나와도,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죗값이라고 생각을 해도. 향숙은 영주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채운다. 만두의 속을 채우고 끝을 꼭꼭 눌러 매듭짓듯, 영주의 상처들을 채워주고 메워준다.

  영주는 ‘복수’라는 마음의 죄에 영인의 합의금 마련을 위해 두부가게를 터는 ‘도둑질’이라는 실제적인 죄를 지었다. 그렇게 반대편에 있던 두 존재들은 ‘죗값’이라는 죄의 무게로 하나로 모여, 서로를 다독인다. 영주는 그녀를 딸처럼 챙겨주는 향숙을 보며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한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과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인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동생 영인의 마음은 확고하다. 하지만 영주의 마음은 바뀌었다.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없어진 엄마와 아빠고, 필요한 사람은 저들이라고. 과거의 죽음에 머물러 있는 영인과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삶에 위치한 영주가 부딪히는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남자들은 과거(죽음)에 붙어있고, 여자들은 미래(삶)로 나아간다. 향숙은 그런 면에서 상문이 미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엾다. 

  실은 영화 속에서 죽음을 딛고 사랑하려하고 살아가려 하는 모든 인물들이 다들 가련하게 느껴진다. 죽음과 죄의 무게가 삶의 무게보다 더 무거워서 영주는 계속해서 허덕인다. 영화의 끝에서 영주는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그렇지만 너무나 따뜻했던 두부가게 부부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죽음을 바라본다. 다리 위에서 위태롭게 한참을 강물을 바라보던 그녀는 강이 흐르는 먼 풍경을 바라보고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다리를 건너기로 한다. 힘겹게 삶을 선택한 것이다. 죽음과 죄의 무게를 딛고 삶으로 향한 영주의 무거운 한 걸음 한 걸음에 응원을 싣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일리 어게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