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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Nov 27. 2018

저니스 엔드

전쟁은 무엇을 남겼나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18년, 1차 세계 대전으로 온 유럽이 전쟁터이던 시절. 영국군의 각 중대는 돌아가며 6일 씩 독일군과 맞붙어 있는 최전방 참호를 지키게 된다. 언제 어떻게 전면전이 터질지 모르는 그곳에 ‘스탠호프’(샘 클라블린) 대위와 병사들이 발령받았다. 이제 막 훈련소를 나온 ‘롤리’(에이사 버터필드) 소위는 함께 유년을 보냈던 스탠호프가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상부에 요청한다. 햇병아리 소위에게는 힘들겠지만, 그의 당돌한 모습에 삼촌인 장군은 그의 요청을 들어준다. 그렇게 앞뒤가 막힌 죽음의 공간, 참호에서 두 사람이 만난다.    


  


- 전쟁은 무엇을 남겼나     


  스탠호프 대위는 ‘죽음’에 절어있다. 그는 전쟁 중에 대위라는 자리까지 오르면서 수많은 죽음의 순간들을 지나쳐왔다. 이제는 제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어 술로 매일을 버티고 있다. 전방의 참호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는 롤리 소위를 만난다. 자신이 잊고 있었던 유년의 모습, 죽음의 그림자를 지고 살지 않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 스탠호프는 롤리를 보며 잠시 흔들린다. 전쟁 속에 파묻혀 자신을 잃게 되자 그가 스스로 연락을 끊었던 롤리의 누나가 떠오른 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지워버렸던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복잡한 마음의 틈바구니 속에서 약하게 진동한다. 

  롤리 소위는 전쟁에 대한 낭만을 가지고 있다. 첫 임무를 지시 받으며 본 화기들, 그리고 그가 처음 쏘아올린 초록색 조명탄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난다.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라는 ‘오스본’(폴 베타니) 중위, 유쾌하고 우직하게 일하는 ‘트로터’(스티븐 그레이엄)가 있는 이곳은 롤리가 처음 접한 사회다. 그는 국가를 지키는 남자들만의 세계에 조금 도취되어있다. 그의 눈으로 본 스탠호프는 과민한 알콜중독자이다. 하지만 롤리를 보는 스탠호프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입대하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한 말 만 믿고 진짜 찾아온 순진한 철부지. 

  롤리가 순수의 극단에 스탠호프가 좌절과 죽음의 공포의 극단에 서 있는 인물이라면, 그 사이에 오스본 중위는 ‘인간성’을 유지하고 삶을 환기시켜주며 중립에 선 사람이다. 술에 취해 무너진 스탠호프를 침대에 뉘이고, 롤리에게 전쟁 속에서도 잃지 않는 존엄한 인간을 보여주는 것은 오스본 중위 하나이다. 그가 아내에게 쓰려던 편지 속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 곳의 젊은이들은 살아온 날이 얼마 되지 않아서,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라는 고백. 그는 이 곳의 젊은이들을 깊은 연민으로 바라본다. 인간 대 인간으로. 

  3월 20일 수요일, 이 날은 독일군을 향한 습격이 성공한 날인 동시에 오스본 중위가 사망한 날이다. 전장 속 인간성의 상징이었던 그가 사라지자 스탠호프는 중심을 잃고 폭주한다. 21일 목요일 적군의 전면공격이 시작될 것이고 후방지원은 없는 상황. 그들은 버티다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모두들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영화 속에서 오직 스탠호프만이 질문한다. “왜 지금, 왜 우리지”. 영화는 예고된 21일에 터져나가는 참호와 함께 삭제되어가는 인물들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그들에게는 별 다른 드라마가 없었다. 터지는 비명, 살아남기 위한 미약한 움직임만이 있었을 뿐. 

  영화는 전쟁이 차근히 남김없이 빼앗아 간 인간성을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남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삶’이라는 약한 고리로 연결된 희망도 보여준다. 반면, 전쟁에서의 죽음이 개인에 있어서는 “왜 지금, 왜 우리”라는 운명적 사건일 수 있으나, 예정된 시간, 예정된 죽음들을 만들어내는 전적으로 계산된 행동이라는 점에서 누가 무엇을 위해 전쟁을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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