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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Dec 12. 2018

더 포스트

신념이 제 빛을 찾을 때.

  1971년 워싱턴, ‘캐서린’(메릴 스트립)은 놀라며 잠에서 깬다. 잠들기 직전까지 뭔가를 읽고 적은 듯 침대는 서류들이 펼쳐져있다. 자살한 남편의 뒤를 이어 신문사 ‘워싱턴포스트’를 이끌게 된 그녀는 깨어난 오늘, 투자자들과의 회의가 잡혀있다. 캐서린을 놀라며 잠에서 깬 것은 단지 회의의 중압감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1966년부터 미국이 덮어온 가망 없는 베트남 전쟁의 진실. 어느 순간에는 격동하며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진실이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캐서린은 이 운명 앞에서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다시 쓰게 된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벤’(톰 행크스)은 시국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지의 특종을 터뜨리는 기자 ‘닐 시언’이 몇 개월 동안 잠적하고 있는 요즘, 대통령 딸의 결혼식 취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싶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그는 백악관 측에서 취재 거부를 해 난항을 겪는 결혼식 취재 건을 두고서 이렇게 말한다. “신문 발행의 자유를 지킬 유일한 방법은 발행이다.”라고. 워싱턴포스트와 캐서린 그리고 벤을 향해 달려오는 ‘진실’ 앞에서 그는 스치듯 했던 이 말을 몸을 던져 행동으로 옮기는 인물이 된다. 

  영화 <더 포스트>는 한 개인이 신념을 지키고 그 불씨를 밝혔을 때를 주목한다. 진실을 밝힐 언론의 자유라는 신념을 지키는 기자들의 얼굴과 등에 빛을 비춘다. 처음 기밀을 유출하는 댄의 얼굴에도, 그런 댄을 보호하는 워싱턴포스트의 기자의 얼굴에도 심지어 기사를 배달하는 인턴 기자의 어깨에도 찬란하게 빛이 스친다. 이렇게 역사를 움직이는 개인들의 신념은 평화를 바라던 미국 사회에 들불처럼 번져간다. 벤은 뉴욕타임즈에서 쏘아 올린 봉화를 더 크게 지피는 역할을 잡아낸다. 그리고 그는 미국사회의 한 시대가 끝났고, ‘자유’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것을 기사를 발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체감한다. 그가 발행한 기사 이후의 미국은 ‘그냥 그런’ 시대가 아니다. 자유가 평화가 승리하는 시대. 그 시대는 지금처럼 격리된 정보도, 사람도 없다. 

  이런 역사의 격동 사이에서 캐서린은 한 사람의 아내이자 여성임을 나타내는 ‘그레이엄 여사’ 라는 이름을 벗고 남자들이 쌓아올린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으려 고전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사교계의 인사로서의 ‘예의’가 아닌 언론 발행인으로서의 ‘사명’을 따른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벤과 프리츠와 같은 신념을 나누는 동료들과 남성들에 의해 다른 사회에서 다른 공간으로 격리되었던 수많은 여성들의 지지가 있었다. 영화의 초반부, 투자자들과의 회의에서 외로운 존재로, 사교 모임에서 남자들의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자 다른 방으로 옮겨졌던 캐서린은 후반부로 갈수록 남성들이 격리한 여성들의 공간에서 남성들의 공간으로 뚫고 나가 자신의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녀는 외로운 투쟁의 끝에서 그녀를 응원했던 여성들의 품으로 내려온다. 

  영화 <더 포스트>는 언론의 자유, 차별 없는 사회 같은 당연한 것들이 정말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냥 그런’ 시대 속에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지, 개인과 사회의 신념이 꺼지지는 않았는지 이제 우리가 우리의 그늘을 뒤적여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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