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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Dec 15. 2018

새터데이 처치

사랑의 조건

  퀴어뮤지컬은 많지만, ‘퀴어’와 ‘뮤지컬 영화’는 쉽게 붙는 장르가 아니다. 둘 다 ‘마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퀴어 이슈는 시스젠더와 이성애 중심 세계와 뮤지컬 영화는 극 내에서 스토리를 끄는 화면과 비현실적인 무대장면이 마찰을 이룬다. 그리고 영화에 들이는 비용과 거두어들이는 비용간의 마찰이 있다. 영화 한 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현실적인 마찰들. 그래서인지 퀴어-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는 쉽게 시도되지 않는다. <헤드윅>이나 <록키호러픽쳐쇼>, <렌트> 같은 거점들이 있어도 <헤드윅>을 제외하고서는 소수자 이슈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어딘가에 녹아있다. 



  영화 <새터데이 처치>는 매우 현재적인 시점을 가지고서 모든 마찰들에 접근한다. 소수자 청소년들이 겪는 현실의 문제를 현대적인 뮤지컬 방식을 섞어 전한다. 주인공 ‘율리시스’(루카 케인)이 겪는 문제는 단순한 ‘게이’의 이슈가 아니다. ‘기독교’ 집안에 ‘흑인’, ‘게이’인 그 중에서도 ‘여성성’을 취하는 ‘청소년’인 그는 소수자들 중에서도 설 자리가 가장 좁다. 

  수많은 스테레오타입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린 소년에게 꽂힌다. 특히 남성은 여성성을 취할 수 없다는 부분은 가족들에게 그가 게이인 것보다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보인다. 결국 그가 산 하이힐이 들키면서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영화의 현실적 지점은 ‘새터데이 처치’의 존재 자체에 있다. 소수자이기 때문에 가정에서 쫓겨난 청소년들을 받아들여주는 유일한 공간. 그곳의 아이들은 대부분 매춘업에 종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숙 끝에 율리시스가 마주한 현실도 그랬다. 가정에서 쫓겨난 아이들에게 놓인 얼마 되지 않는 선택지. 영화는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자들이 서있는 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취하고 있지만, 기존에 뮤지컬 영화에서 보았던 시각 스펙타클에 비한다면 담백하다 못해 건조한 편이다. 이는 율리시스가 처한 현실을 과포장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에 누가 되지 않는 선을 지키며 음악을 섬세하게 다룬다. 

  소년 율리시스는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에서 ‘사랑의 조건’에 걸려 넘어진다. 가족, 사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울타리를 친다. 영화 속에서는 이 조건이 끝없고 영원하다고 슬프게 노래한다. 현실의 사랑은 얼룩덜룩 티가 묻어서,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영화 속 가족들은 끝내 율리시스가 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그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을 깨닫는다. 이들은 ‘가족’, ‘성별’, ‘젠더’, ‘퀴어’의 이름들을 허물어 내고 ‘사랑’이라는 끈끈한 감정을 확인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율리시스 한 개인만의 허물벗기가 아니다. 갓 허물을 벗고 나온 연약한 이들을 감싸줄 햇살에 대한 이야기다. 앞으로도 수많은 나비들이 고치에서 날개를 펼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빛으로 맞이하고 있는지 혹은 언 바람 불어 궁지로 내몰고 있지는 않았는지 영화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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