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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an 06. 2019

갈매기

고정된 마음

  영화 <갈매기>의 사랑의 작대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명확하게 엇갈려있다. 작가를 지망하며 실험적인 극을 시도하는 ‘콘스탄틴’(빌리 하울)은 배우 지망생 ‘니나’를 사랑한다. 그런 둘 사이에 현재 촉망받는 젊은 작가인 ‘보리스’(코리 스톨)이 끼어들면서 니나의 마음은 흔들린다. 그녀는 배우의 꿈과 직결된 우상 보리스와의 사랑과 진행 중이었던 콘스탄틴 사이에서 고민한다. 콘스탄틴은 그런 니나가 떠나갈까봐 불안하다. 그리고 그것이 보리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은 자신의 작가적 소양과도 엮여있어 보리스에게 질투가 난다. 

  니나가 보리스를 열망하면서 흔들리는 사람이 콘스탄틴 말고도 한 명 더 있다. 유명한 배우이자 콘스탄틴의 엄마인 ‘이리나’(아네트 베닝)다. 그녀는 ‘젊음의 공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박수만 받았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그녀의 영원한 젊음을 꺾을 진짜 청춘이 나타났다. 그녀를 비롯한 호숫가 별장의 모든 사람을 호수의 ‘사랑의 주문’에 걸렸다. 그 여름, 그곳에 있던 모두는 사랑과 질투에 눈이 멀었다. 

  보리스를 열망하는 니나의 모습을 보며 질투에 휩싸인 ‘콘스탄틴’은 하늘에 고정된 듯 날고 있는 갈매기를 겨눈다. 그리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화면은 ‘니나’를 번갈아 비춘다. 끝내 방아쇠가 당겨지고 갈매기는 땅으로 떨어진다. 서로를 향한 질투와 열망의 화살표가 틀어지는 순간이다. 보리스는 땅으로 추락한 갈매기를 행복과 자유가 ‘그’에 의해 파멸했다고 말한다. 

  갈매기가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서로를 향해 고정되어 있던 마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니나는 끝까지 ‘상징적’이기만한 콘스탄틴에게 마음을 접고 보리스를 향해 마음을 움직인다. 그녀가 움직이자 뭍 밑에 있던 질투와 사랑들이 마구 엉키기 시작한다. 이리나는 보리스를 차지하기 위해 더 과시적으로 자신의 죽지 않은 젊음을 과시하고, 콘스탄틴은 우울과 자학에 빠져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빗맞은 총알이 그의 목숨을 구했지만, 이 일로 사랑에 얽힌 모든 이들이 별장을 떠나가게 된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마샤’(엘리자베스 모스)일 것이다. 지배인의 딸인 그녀는 부와 젊음을 가졌지만, 콘스탄틴을 짝사랑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콘스탄틴을 바라보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그녀 자신을 애도하며 매일 상복같은 검은 옷을 입는다. 콘스탄틴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는 사실을 안 그녀는 그의 사랑은 니나에게서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직감한다. 그리고는 그녀를 사랑하는 가난한 고등학교 선생과 결혼하기로 한다. 사랑의 주문에서 도망치는 그녀, 하지만 다른 인물들과 다르지 않게 여전히 슬퍼 보인다. 그건 ‘그 사람’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고정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흐르는 시간 속에 고정된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상처 입는다. 삶에 능숙한 기성세대인 이리나와 보리스는 사랑과 질투의 열병을 능숙하게 빠져나가지만, 처음 불타는 감정을 만난 청춘들은 이리저리 치이고 부딪쳐 깨진다.

  영화는 처음과 끝을 시간의 간격을 둔 같은 모습으로 그려낸다. 같은 장면 속에서 반복되는 것과 반복되지 않는 것들의 격차는 뚜렷해진다. ‘이리나’와 ‘보리스’는 여전한 명망과 죽지 않는 젊음을 누리고 있다. 반면, 콘스탄틴과 니나의 마음은 처참하게 무너져있다. 콘스탄틴은 여전히 불안함에 피아노를 치고 있으며, 그런 그 앞에 나타난 니나는 보리스에게 사랑을 바쳤다가 파멸한 모습이다. 영화 속 ‘세대’는 빛과 그림자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죽지 않는 젊음을 누리는 세대와 찰나의 젊음마저 흡수당한 세대. 그리고 기성세대를 뛰어넘을 수 없는 청년 세대들의 넘을 수 없는 벽. 그것은 그들이 부양되는 경제적 상황이기도, 새로운 시도는 허세라고 평하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틀 이기도하다. 그 벽은 너무나 견고하고 단단하다. 니나가 떠나가고 콘스탄틴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이번 총성은 빙고를 하고 있던 이리나와 그녀의 친구들의 대화로 인해 묻혀버린다. 하지만 이리나의 가슴에 있는 붉은 장식이 그녀가 마주할 미래를 예지하는 것 같다. 아마도 콘스탄틴은 그들이 그렇게 넘어간 시간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청춘이 할 수 있는 확고한 균열을 만들어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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