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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an 16. 2019

언더독

마음껏


  영화 <언더독>은 반려견 유기의 현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뭉치’(도경수 목소리)는 사료 한 포대와 함께 난생 처음 보는 곳에 유기되었다. 뭉치의 주인은 뭉치 목에 감긴 전기 목걸이를 풀어주며 말한다. “이제 마음껏 짖어도 돼.” 지금까지 뭉치의 삶에는 ‘마음껏’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그는 다른 애완견들이 그렇듯 주인의 일방적인 사랑 안에서만 자라왔다. 주인이 주는 사랑과 주인이 주는 구속 안에서 뭉치는 목소리를 잃었다. 뭉치는 사랑을 끊고 대신 목소리를 주겠다는 주인의 일방적인 결정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뭉치는 ‘짱아’를 필두로 한 재개발지대의 유기견들을 만나고 나서도 주인이 준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테니스공을 물고 다닌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채. 

  <언더독>은 일본, 미국 애니메이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애니메이션만의 감성을 가득 담았다. 물을 가득 담은 수채감성이 담긴 색채들로 한국적 풍경들을 담아낸다. 그것은 봄엔 철쭉과 나팔꽃이 피고, 가을에는 도토리가 궁구는 한국의 유려한 산천 풍경뿐만이 아니다. 재개발을 앞둬 무너지고 있는 이제는 헌 풍경이 되어버린 가옥들이 그렇고, 분단의 상징인 DMZ의 삼엄한 철창들이 그렇다. 뭉치와 친구들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정 속에는 한국 애니메이션만이 담을 수 있는 우리의 풍경들이 담겨있다. 

  뭉치는 재개발지대에 개 사냥꾼으로 인한 위협을 피해 친구들을 데리고 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영토’였던 산에서도 쫓겨 인간이 없는 자유의 공간으로 걸음을 옮긴다. 인간과의 인연이 한 번 끊어지자 유기견들이 발을 붙일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 의해 계속해서 밀려나고 밀려난다. 한 사회의 도덕성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나 유기된 삶을 살아가는 유기견들의 현실이 단순히 유기견 만의 과제인지 생각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증명되지 못하고 편입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중심에서 밖으로 밀려난다. 영화는 우리가 약자를 어떻게 취급해 왔는지를 유기견들이 자유를 찾는 여정을 빌려 보여준다. 그들을 보장해주는 제도도 인간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몸 그리고 같은 처지를 공유하는 관계들로 서로를 증명한다. 

  영화는 다양한 견공 액션을 선보인다. 사람들 다리 사이를 쏜살같이 해치는 견공들의 모습, 고라니를 사냥하기 위해 벌이는 협동작전 등 <언더독>은 견공의 다양한 모습을 유쾌하게 표현해낸다. 영화의 마지막, 뭉치는 군인들을 뚫고 DMZ를 향해 철창을 넘어야 한다. 테니스공이 아닌 수류탄을 물고 군인들과 놀이를 하듯 도망치는 뭉치. 위험천만한 순간임이 분명하지만 영화는 아슬아슬한 마음을 웃음이 터지는 해프닝으로 표현한다. 끝내 수류탄이 터지고 뭉치가 꽃바람에 쌓여 철창을 넘어 자유로 던져지는 순간은 영화에서 시각적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뭉치와 친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자유의 공간을 찾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남는 질문은 그들이 설 자리는 정말 그곳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씁쓸한 질문이었다. 더 이상 버려지는 존재가 없기를, 그리고 지금 거리를 헤매는 존재들이 몸을 녹일 따뜻한 마음의 자리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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