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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an 29. 2019

증인

웃는 낯


  상황이 웃기지만 결과가 안타까울 때 혹은 그 반대일 때, 우리는 ‘웃프다’라고 한다. 웃음과 슬픔이 공존하는 상황을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가 없어서, 인터넷에서는 ‘웃기면서도 슬픈’ 상황을 ‘웃프다’라고 줄여서 말한다. 우린 매일 감정 속에 잠겨있지만, 정작 감정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때는 많지 않다. 웃고 있어도 마음은 쓰릴 때가 있고, 억지로 웃기도 하며,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칼 같은 마음을 품고 있기도 하다. 영화 <증인>에서 자살과 타살의 경계에 선 사건에서 유일한 목격자인 ‘지우’(김향기)처럼 타인의 ‘웃는 낯’ 아래의 미묘한 감정들을 읽어내지 못하는 우리들도 각자 자신의 세계 안에 갇힌, 자폐의 삶을 조금씩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 <증인>은 자살과 타살의 경계에 있는 사건의 국선변호를 맡게 된 ‘순호’(정우성)가 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를 만나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이다. 영화 속에서 반전을 주는 것은 증언들도 뒤집히는 자살, 타살의 결과가 아니다. 우리들의 ‘낯’이 얼마나 두꺼운지에 대한 진실에 마음의 수면이 흔들린다. 우리는 ‘낯’아래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숨기고 있었을까. 나를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했던 수많은 ‘웃는 낯’들 중에 진실된 웃음은 몇 번이나 될까. “사람 마음이 참 어려워요.” 영화 속 지우는 말한다. ‘실은 나도 내내 그래왔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순호는 원칙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인물이다. 오랫동안 민 변호사로 살아왔던 그는 이제는 대형 로펌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돈’은 그를 일상을 흔드는 가장 큰 문제다. 돈을 따라 움직이는 로펌의 흐름에 따라가며 적당히 때 묻고, 더 이상 돈 앞에서 초라해지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그 앞에 ‘지우’라는 증인이 나타났다. 세계의 모든 것을 여과 없이 빨아들이는 그녀. 그래서 웃는 낯 아래 복잡한 감정 아래 상처받는 소녀를 보면서 순호는 고민한다. 끝까지 자신은 ‘저울’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그에게 지우는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좋은 사람’. ‘사람’이 되기도 힘든 데, ‘좋기’까지 해야 하다니. 말하기는 쉽지만 되기는 어려운 두 단어가 만났다. 이 말은 마주한 순호는 영화의 마지막에 지우에게 이렇게 답한다. ‘노력해보겠다’고. 영화가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한 번의 선행, 한 번의 진실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속을 모를 웃는 낯으로 살아가고, 이리저리 굴러먹어서 때가 묻기도 하는 우리에게 ‘좋은 사람’은 그저 꾸준히 노력해야 겨우 그 단어와 비슷한 삶을 잠깐 입어볼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란 말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정직하게 걸어가야 담아낼 수 있는 말이다. 어쩌면 말의 크기가 인간의 크기보다 큰 말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말과 나의 사이를 줄이기 위해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향으로 걸어 발자국을 채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순호는 ‘좋은’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 보기로 한다. ‘노력해보겠다’는 순호의 말에는 닿지 않을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 지우를 향해 웃고 있는 그의 마음은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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