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옹 Mar 26. 2019

우상

우상은 지지 않는다.


  ‘구명회’(한석규)는 도덕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도의원이다. 그를 향한 대중의 지지는 단단해서 많은 이들이 그가 차기 도지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방금 일본에서 하늘을 날아 땅에 닿았다. 이제 다시 위로 미끄러지듯 올라갈 일만 남은 구명회와 절뚝거리는 다리로 철물점을 운영하며 지체장애를 가진 아들을 길러낸 ‘유중식’(설경구)의 만남은 어쩌면 평생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을 것이다. 구명회의 아들이 유중식의 아들을 죽이기 전까지는. 

  명회의 아들 요한이 ‘뺑소니’로 자수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그날 중식의 아들과 함께 신혼여행을 떠난 ‘련화’(천우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명회와 중식 모두 사건의 중요한 목격자인 련화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날 련화가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다는 사실과 조선족 직업여성인 련화의 평탄하지 않았던 삶이 드러나면서 련화에 대한 미스터리도 이야기에 더해진다. 

  이렇게 영화 <우상> 속 인물들은 ‘아들이 아들을 죽인’ 운명적인 사건으로 시작해 얽히고설킨다. 그 사이에서 많은 대사와 미스터리들이 궁금증을 회수하지 못한 채 유실되어가지만, 그래도 꼿꼿하게 버티고 선 ‘구명회’라는 인물이 있다.   


   


- 우상은 지지 않는다.      


  명회와 중식 그리고 련화의 관계는 영화가 진전될수록 관계 사이의 격차를 드러낸다. 명회와 중식의 관계는 ‘아들을 둔 아버지’에서 ‘피해자의 아버지와 가해자의 아버지’, ‘권력을 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뉘고, 중식과 련화의 관계는 ‘가족’과 ‘이민을 위한 계약관계’ 사이를 오간다. 또 명회와 련화는 ‘돈과 말로 지휘하며 살아남는 자’와 ‘몸뚱이 하나로 살아남는 자’로 관계들은 계속해서 쪼개져간다. 이렇게 인물 간의 격차를 띄우면서 드러나는 것은 명회가 감추고 있는 지독한 권력을 향한 욕망과 그런 추악한 본성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회의 고고한 지위다. 

  명회와 가장 먼 존재, 조선족 직업여성이자 불법 체류자이기에 ‘보호 외국인’으로 수감되어  표류하는 련화의 대사는 대부분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대사의 사투리가 짙어 한국어임을 알아차릴 수는 있지만, 명확한 뜻은 잡아내기 힘들다. 련화는 관객에게도 가장 낯선 존재다. 영화 속에서 가장 소외된 위치의 인물이 선택한 표현방식은 육체적이고 폭력적이다.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똑같이 보복하는 것. 영화 속에서 그녀는 피와 폭력을 몰고 다니는 것 같다. 하지만 명회를 중심으로 수직으로 내려오는 폭력적인 권력에 가장 취약한 사람이 련화이기도 하다. 명회의 전화 한 통에 련화의 목숨은 오락가락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목숨을 걸고 ‘말’에 대해 보복한다. 

  련화가 명회로부터 내려오는 권력의 폭력에 육체적으로 맞서고 있다면, 중식은 계속해서 ‘말’의 매를 맞고 있다가 ‘상징’을 향해 보복을 한다. 그는 ‘제일 윗대가리의 목을 잘라라’ 라는 말을 듣고 만인의 우상인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목을 자른다. 이후에 오는 비난의 뭇매는 중식을 향해서 쏟아지지만 그의 행동 덕분이었을까, 련화의 가장 거대한 복수가 명회에게 내리쳐진다. 

  하지만 영화의 끝, ‘제가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이유는’이라는 프롬프터의 자막을 띄우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연설을 하는 사람은 명회다. 전처럼 어쩌면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갈채를 보내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 중에서 동료 국회의원이 명회에게 ‘자네는 드라마가 있어’라고 이야기한다. 명회는 집요하게 자신의 삶을 ‘드라마’로 만들어 대중을 사로잡는다. 어쩌면 그런 대중이 있기에 명회가 살아남는지도 모른다는 다소 뻔한 반문과 함께, 박수갈채 속으로 중식과 련화는 잊혀 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증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