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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pr 03. 2019

This is America

<어스>(2019), <바이스>(2019)

  61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로 선정된 곡은 차일디쉬 감비노의 “This is America" 였다. 팝송은 매 해 시상식을 통해서 수혈 받는 ‘팝송 미립자’인 나에게 “This is America"의 수상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흑인, 힙합이 상을 탄 것도 흔한 광경이 아니었을 뿐더러 제목에서부터 풍겨오는 강렬한 미국 비판의 향기 때문이었다. 이 곡과 뮤직 비디오에서 겨냥하고 있는 미국의 병폐들은 주로 ‘인종’에 대한 시선들을 기저에 깔고 있다. 차일디쉬 감비노는 흑인 화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미국의 폐부들을 드러낸다. 

  영화계에서도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에 대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문라이트>, <겟아웃>에 이어 최근 <그린북>까지 인종이슈를 다룬 작품들이 연달아 노미네이트와 수상을 하며 인종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겟 아웃>으로 인종차별 이슈를 정통으로 저격하며, ‘공포’장르로 풀어내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조던 필 감독이 비슷한 맥락이지만 더 확장된 목소리로 <어스>를 내 놓았다. 

  <어스>는 별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난 흑인 가족이 자신들을 죽이려는 도플갱어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한 여름 밤의 공포를 담았다. 목소리가 없는 도플갱어들은 미국의 이민자들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들은 땅 위의 본체, 미국인들과 같은 움직임으로 좁은 지하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잊혀진 존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일제히 땅 위로 올라와 같은 모습의 사람들을 가위로 잘라내고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다. 손에 손을 엮어 길고 긴 빨간 선으로. 

  그들이 이은 빨간 선은 유일하게 말을 할 수 있고, 반전을 가진 ‘애이들레이드’(루피타 뇽)의 도플갱어 ‘레드’가 기억하는 존재를 드러내며 도움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극 중 레드가 기억하는 TV뉴스의 한 장면은 아프리카의 기아문제를 돕기 위해 사람들이 손을 잡아 긴 인간 띠를 만들었던 퍼포먼스였다. 이렇게 영화는 ‘아프리카-미국 중산층 흑인-이민자’의 손을 잡아 한 데 엮는다. 

  ‘애이들레이드’의 가족은 휴가철에 별장으로 떠나올 정도의 중산층 가정이다. 하지만 애이들레이드의 남편은 그의 백인 친구를 경제적으로 따라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비록 자신이 구할 수 있는 보트가 한쪽 방향으로만 빙글빙글 도는 엉터리 모터를 가진 보트일지라도. 이렇듯 포함되었음에도 ‘격차’를 느끼는 그들에게 그들과 같은 얼굴을 한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존재들은 공포로 다가온다. 공포는 미국의 흑인들에게 묻는다. 과연 자신들도 ‘인종적’으로 평등한 삶을 살고 있는지.

  이렇듯 이민자들로 시작되어 이민자들로 이뤄진 나라 미국은 여전히 ‘다양성’의 추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수록곡 "America"에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은 남녀 편을 갈라서 노래한다. 여자들이 “미국은 자유롭고 살만한 곳이야”라고 말하면 남자들은 “그건 네가 백인이라면” 이라고 토를 다는 식이다. 이민자들의 희망과 현실이 흥겨운 리듬의 녹아든 이 노래를 영화 <바이스>의 끝에서 만났다. <바이스>는 부시정권, 실은 그 전부터 차근차근 미국 공화당에 스며든 미국 보수의 썩은 뿌리 중 하나인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의 삶을 그린다. 영화는 딕 체니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의 행보를 면밀하고 유머러스하게 전달한다. 


  영화 속에서 럼스펠드를 지칭할 때 ‘접이식 나이프’ 같다고 말한다. 현란하게 휘두르며 사람들을 베어낸다는 뜻이다. 그렇게 빗대면 말이 없이 도사리고 있다가 가차 없이 권력을 휘두르는 딕 체니는 한 마리의 상어 같다. 럼스펠드와 다르게 그가 부단히 정치라는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가 헤엄치고 있는 상어라면 그의 아내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는 그의 앞에서 피 냄새를 흘리며 그를 조종한다. 그녀는 딕 체니 보다 더 강렬하게 권력을 열망하고 있는 여자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몰아붙이기도 하고, 그의 위치를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인식하고 활용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와 묵직한 행동주의자 남편인 딕 체니가 만났으니, 이 둘은 차근차근 권력의 성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 

  딕 체니는 부시에게 부통령 자리를 제안 받으면서 권력의 정점에 서는데, 사법, 행정부의 감시를 피하면서 인사권, 군 지휘권, 외무 등 주요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또한 그는 지속적으로 “단일 행정부론”에 관심을 보였고, 9.11테러 이후 알카에다, 이라크, ISIS와의 전쟁으로 이어지며 그들을 가로막던 법은 끝나고 폭정이 시작된다. 

영화는 이 모든 상황을 해설하는 나레이터로 ‘커트’라는 시민을 둔다. 그는 딕 체니와는 만나본 적도 없는 소시민이지만, 그가 벌인 전쟁의 포화를 직접 겪은 사람이다. 이라크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조지 부시의 떠는 다리가 쏟아지는 폭탄을 피해 책상 밑으로 들어가 공포에 떠는 이라크 시민의 다리로 이어지는 것처럼, 커트의 심장은 딕 체니의 심장으로 대체된다. 이런 극단적인 대비는 결국 그들에게는 일말의 대의도 신념도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해서 정치라는 물 안에서 부지런히 헤엄치고 있다. 영화는 딕 체니의 뻔뻔스러운 인터뷰와 ‘오렌지 치토스’라며 트럼프라는 이름을 조명하고 그리고 엔딩 크레딧의 “America"까지 알뜰하게 미국의 민낯을 싣는다. 

  정치라는 이름을 달고 ‘불안’을 기회로 삼으며 자신의 배를 불리고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또 ‘불안’이라는 이름 안에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집단의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행태도 이제는 우리에게서 먼 뉴스가 아닌 듯하다. 그렇기에 ‘이것이 미국이다’ 라며 음악으로 영화로 전해지는 ‘미국을 향한 미국인들의 비판’이 누군가에게는 뼈를 때리는 느낌일 수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등에 난 뾰루지 정도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도 시민으로서 ‘불편의 감각’을 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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