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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pr 07. 2019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모래알의 온기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 진행 중인 ‘아녜스 바르다 아카이브 특별전’을 통해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2008)을 보았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은 아녜스 바르다가 해변에서부터 자신의 인생을 회고해 나가는 영화다. 브뤼셀의 해변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해변에서 해변으로, 해변에서 강을 타고 물을 타고 이동한다. 원초에서 문명으로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자연에서 도시로 역주행해 들어가는 듯한 그녀의 인생 여정은 거슬러 올라갈수록 얼개를 편다.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가장 여린 생명이었던 어린 시절에서부터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새로 짓고 한 사람의 개인이 되어가고, 사진과 영화라는 시선을 얻으면서 사회적인 목소리를 펼치는 것까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족을 일구고, 영화라는 열정을 함께 나눈 동료들과 기꺼이 영화에 출연해주었던 ‘이웃’들까지. 그녀의 움직임에는 온기가 있고, 온기가 있는 그녀 곁에 모인 ‘영화라는 특별한 사건’으로 엮인 공동체에는 관계의 온기가 담겨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해낸다. 거리에 모래사장을 깔아 놓고 그 위로 사무실을 옮겨와 업무와 휴양이 섞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자신의 영화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패러디해 삶을 녹여낸다. 그녀는 ‘재현’을 통해 삶의 밝은 부분들은 더 밝게, 지난했던 부분들은 다시 덧칠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조명한다. 단순히 혹은 묵묵하게 삶을 한 편의 영화나 감정으로 뭉쳐놓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하게 스크랩해놓는다.

  영화가 끝나고 남은 감정이 4월의 봄 햇살만큼이나 따뜻했던 이유는 그녀가 기억하는 이름들에 있다. 영화에서 바르다는 계속해서 사라져간 이름들을 꺼내놓는다. 영화에 출연했던 이웃들과 영화계 동료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 자크 데미까지. 현재의 그녀는 한 때 살과 피를 가졌던 사람들의 이름을 품고 있다. 해가 쏟아지는 해변의 모래알들이 온기의 알갱이가 되어 서로를 데우는 것처럼. 이제는 그녀도 ‘이름’과 그 ‘이름의 영화’로 기억되겠지만, 이름의 온기는 어느 이름들보다 포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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