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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pr 16. 2019

러브리스

사랑이 없어진 자리에

  12살 소년 ‘알로샤’(마트베이 노비코프)는 어느 밤, 부모가 다투는 소리를 듣는다. 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제냐’(마리아나 스피바크)와 ‘보리스’(알렉세이 로진)의 갈등의 골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알로샤는 이혼을 앞 둔 두 사람이 서로 아들을 맡지 않겠다며 떠미는 대화를 듣고 숨 죽여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다음 날, 알로샤는 종적을 감춘 듯 사라진다. 

  영화 <러브리스>는 이혼을 앞두고 있던 제냐와 보리스 앞에 알로샤가 실종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알로샤를 찾으려 움직이지만, 갈수록 그들의 움직임은 숨이 막힌 듯 답답하면서 공허하다. 영화는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깊은 진공상태만을 남겨두었다.      



- 사랑이 없어진 자리에     


  영화 속에서 알로샤와 제냐, 보리스가 얽히는 이야기는 알로샤가 무신경하게 바라보았던 창밖의 풍경이 창을 건너 안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창 안의 풍경에는 그 전까지 밝게 리본을 흔들며 하교하는 소년의 모습은 없다. 무정한 엄마와 사춘기 아들, 그리고 곧 깨어질 가정만이 존재한다. 가정은 이미 많이 해체된 상태다. 제냐와 보리스에게 남은 숙제는 ‘집’과 ‘알로샤’다. 집은 곧 팔릴 것 같은데, 알로샤가 문제다. 각자 자신의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그들은 서로 알로샤를 맡기를 거부한다. 그런 상황에서 알로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이가 사라진 비극적인 일, 하지만 자기 발로 가출한 아이가 사라진 상황은 어떻게 보면 제냐와 보리스에게는 그들을 묶었던 짐이 한 순간에 소거된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은 알로샤를 찾는 데 큰 감정적 동요를 겪지 않는다. 죽은 아이를 확인하는 자리 외에서 그들은 절실함과 초조함 없이 움직인다. 사랑이 없는 공허한 수색작전은 계속되는 반복 작업으로 보인다. 

  제냐와 보리스에게 사랑이 넘쳤던 순간은 알로샤가 사라진 밤에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각자의 애인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랑이 사라진 그 시간에 욕망만이 불을 켜고 있다. 영화 속에서 제냐와 보리스 두 사람은 모두 ‘사랑이 부재한’ 욕망을 지시하고 있다. 자주 계산대 앞에 서는 보리스는 ‘돈’과 ‘지위’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고, 자주 핸드폰을 보며 SNS를 하는 제냐는 ‘진짜가 부재한 관계’, ‘허영’을 즐기고 있다. 사랑이 섞여있다고 믿는 것들이지만 제냐와 그녀의 남자친구의 데이트 현장에서 젊은 여자들이 소리쳤던 ‘사랑과 셀카를 위하여’라는 말처럼 사랑이라는 말의 농도는 아주 옅거나 없다. 

  사랑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들 사이로 끼어드는 것은 ‘종말론’, ‘기독교 원칙주의’, ‘부정선거’와 ‘전쟁’과 같은 삭막한 뉴스들이다. 이 뉴스들은 메마른 제냐와 보리스의 관계에 스미면서 영화는 사회문제를 전하는 동시에 보는 사람의 감정을 더 팍팍하게 만든다. 사랑이 없는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들은 사위가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준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사랑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닌 듯하다. 건조하게 수색작업을 이어가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 ‘사랑 없음’의 지속처럼 보인다. 

  그들의 ‘사랑 없음’이 반복될 것이다. 제냐의 엄마에게서 제냐로 ‘무정한 모정’이 반복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덜컥 아이부터 임신시키는 보리스의 욕망이 반복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예지하듯이 보리스의 아이를 가진 마샤는 보리스와의 잠자리 후 사과를 깨문다. 

  집은 팔리고,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창 안으로 들어왔던 시선은 창밖으로 향한다. 계절은 영화의 시작처럼 겨울이다. 영화는 호수에 반사된 겨울나무의 이미지로 시작해 반사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제냐의 남자친구의 집도, 제냐의 살롱도 모두 거울이 있는 공간이며, 영화의 시작과 끝도 창을 두고서 안 밖은 다르지만 물 위와 아래처럼 맞닿아 있다. 얇고 투명한 막 하나로 마주한 그곳을 들여다보면 사랑이 아닌 욕망이 들어가 있고, 사랑이 아닌 해체된 관계들이 들어있다. 영화는 이렇게 우리가 반사되어 보지 못했던 것들의 이면을 드러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사랑 없는’ 세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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