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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y 02. 2017

해피 투게더

사랑이라는 격렬한 마찰

 보영과 아휘는 먼 타향인 아르헨티나에서 사랑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평범한 연인이다. 불안하고 자유로운 성격의 보영은 이기적이고 사랑에 무책임하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 아휘에게 심적으로 의지한다. 아휘 또한 그를 사랑하지만, 자신에게 머무르지 않는 보영이 불안하며, 불만이다. 

 영화는 이 둘의 이별과 만남, 그리고 사랑의 끝을 보여준다. 동성연애라는 것을 제외하면 일상적일 수 있는 스토리이지만, 아휘와 보영이 상처받고 입으면서도 ‘다시 만나게’되는 사랑의 굴레는 아름답지만 슬프고, 아프며, 공허하다.      




- 사랑이라는 격렬한 마찰

 아휘와 보영은 극과 극의 사람이다. 처음부터 이어지는 강렬한 베드씬에 이어서 둘이 영화 속에서 첫 이별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구아수 폭포를 향해 가던 중 보영이 산 차가 퍼져버리고, 겨우 고쳐 가려고 했지만 길을 잘못 들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아휘는 이 일을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보영은 되는 대로라는 식의 무책임한 자세를 취하다 여행이 길고 지루해지자,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자’라며 이별을 고한다. 아휘는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독백을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자’라는 말은 인연과 만남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과 함께, 둘의 만남을 인연이라는 거대하고 무심한 흐름에 던져 넣는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인연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아휘가 그렇게 아파했던 것이 아닐까. 또 그랬기에 운명 같은 인연에 다시 사랑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연은 탱고 바에서 도어맨으로서 일하며 살아가던 아휘의 가게에 보영을 데리고 온다. 여러 남자들과 함께 바를 찾은 보영을 창문 너머에서 바라보고 떠나보내야 했던 아휘. 그런 아휘를 자신의 모텔 방으로 부른 보영은 그에게 입을 맞추며 곁에 있어달라고 한다. 하지만 아휘는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조롱하는 거냐며 그에게 소리친다. 

 그 사정을 들은 보영은 어디선가 시계를 구해다 주지만, 그 시계로 인해서 폭행당해 큰 상처를 입은 보영은 아휘를 찾아간다. 그리고 아휘에게 “다시 시작하자” 라고 말한다. 

 이 대사 이후로, 이별 후 흑백이었던 영화는 다시 색깔을 찾는다.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은 둘 사이에서 사랑의 불을 켜는 신호와도 같다. 그 말 한마디에 고향을 등지고 먼 아르헨티나까지 왔고, 한 마디 말에 일상에 색이 돌아온다. 색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사랑하는 두 사람, 그리고 일방적으로 기다리는 아휘가 얼마나 보영을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다른 언어인 것 같다. 

 아휘에게 매달리듯 살아가고 사랑하는 보영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아휘의 모습에 가려진, 보영을 향한 사랑을 증명하는 다른 언어는, 목소리이다. 장은 아휘가 식당에서 일할 때 만났던 동료로 그는 눈보다 귀가 민감한 사람이다. 표정으로는 가릴 수 없는 감정을 목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보영과 통화하는 아휘의 목소리에서 수화기 너머의 사람을 향한 사랑을 감지한다. 

 이 후로 둘은 사랑하며 서로에게 상처 주는 격렬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질투와 사랑, 구속과 자유에서 부딪힌다. 이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두 사람이 ‘사랑’하나로 부딪혔을 때 내는 마찰음 같다. 마찰은 상처를 남기며 뜨겁게 마모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뜨겁게 부딪히며 사랑한 둘이 이별한 후 차갑게 식은 자신 그리고 관계를 마주한다. 항상 한 자리에 있던 아휘는 혼자 이구아수로 떠나고, 그의 곁이 아닌 다른 곳을 헤매던 보영은 그가 있던 집으로 돌아온다. 서로 뒤바뀐 자리에서 끝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격렬한 마찰 끝에 남은 것은 결국 나의 모습 안에 있던 너였던 것이라는 걸 말하는 듯하다.      




- 나는 네가 아프다

 상처를 계속해서 만지고, 딱지를 뜯어내면 아물지 못하고 상처는 더 깊어진다. 아휘와 보영의 관계가 그랬던 것 같다. 서로 다른 사랑을 하면서 상처 입히지만, 사랑보다 외로움의 크기가 커 서로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그렇게 상처를 계속해서 입혀 결국 지울 수 없는 흉터가 되어버린 관계. 

 아휘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에서 아휘가 보영을 향한 아픈 사랑은 상대적으로 잘 서술되어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 곁에서 계속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 “나는 그가 아플 때 가장 행복했다”라는 말에서 육체적으로 고정된 사랑에 대한 그의 집착을 읽을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감정이지만, 그 집착 안에는 보영이 떠도는 이유와 같은 짙은 외로움이 스며있다. 

 외롭기에 떠도는, 아휘의 사랑을 중력 삼아 가장 먼 곳까지 떠났다가 돌아오는 보영은 아휘에게 무심하다시피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금전적으로 힘들어 하는 아휘에게 남의 시계를 가져다주고 피투성이가 되어 그를 찾는 보영의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는 그를 향한 순수한 마음이 담겨있다. 어쩌면 아휘의 사랑을 믿었기에, 그에게서 가장 멀리까지 가는 무모한 행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릴 것이라 믿고 떠나는 사람 둘의 사랑이 어느 쪽이 더 큰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아마 무거운 등가를 이룰 것 같다. 그리고 그렇기에 둘이 굴레와 같은 사랑을 이어갔던 것이 아닐까. 

 영화 끝에서 아휘는 보영이 없는 채색된 삶을 살아간다. 보영과의 상처가 아문 모습이다. 그리고 나아가는 지하철과 함께 흐르는 ‘해피 투게더’는 사랑하는 동안은 아팠지만 추억 속에서 행복하게 기억되는 둘의 찬란한 모습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 영화의 감정을 끌고 가는 요소들

 아휘와 보영의 굴레와 같은 사랑을 아프고, 아름답게 느낄 수 있었던 데에 영상과 영화에 흐르는 탱고 음악의 공도 컸다. 

 탱고 바에서 도어맨으로 일하는 아휘와 손님으로 그곳을 찾은 보영의 감정과 처지의 상하관계를 보여주는 듯이 창문 밖의 아휘를 찍은 장면, 보영과의 이별 후 배에 누워있는 아휘의 모습으로 전해지는 깊게 넘실대는 실연의 아픔, 따뜻하고 찬란하게 기억되는 장과의 축구하던 장면, 영화 안에서 불안하게 혹은 찬란하게 흔들리는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르헨티나와 정 반대 편인 홍콩을 이야기 하며 뒤집힌 화면을 보여준 것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높은 채도에 탈색된 듯한 밝지만 감정 없는 색감이 인상 깊었는데, 색감만으로 둘의 공허한 사랑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피아졸라의 탱고음악 또한 격렬하고 아픈 사랑을 감정적으로 묘사해준다. 탱고의 불안하고 슬픈 음색, 그리고 그 흔들림이 고조되면서 밀고 당기며 음악의 공간을 채울 때 느끼는 공허와 울림이 있다. 이 스산한 감정이 영화 속의 사랑과 이별을 아프게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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