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옹 May 06. 2017

파도가 지나간 자리

파도 밑 깊게 자리한 사랑

 1차 대전 참전 후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사람들을 피해 야누스 섬의 등대지기로 자원한 톰은 고독한 그를 이해하며 그의 삶을 비추는 여인 이자벨을 만나게 되고 둘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톰과 이자벨은 결혼해 둘 만의 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두 차례의 유산으로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변에 작은 배에 한 남성의 시신과 아기가 밀려오는데요. 등대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육지에 보고해야하는 톰은 이사벨의 간곡한 설득에 임무를 외면하고 그 날 있었던 일은 묻어둔 채 아이를 키우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딸 루시의 세례식을 위해 찾은 교회에서 톰은 루시가 떠밀려온 날 사망한 부녀와 미망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죄의식에 고통 받았던 톰은 미망인인 헤나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남기는데요. 이 편지 한 통으로 인해, 톰과 이자벨, 루시 그리고 헤나의 삶에는 격렬한 파도가 일게 됩니다.      




- 파도 밑 깊게 자리한 사랑

 영화 속 등대가 있는 섬의 이름은 ‘야누스’입니다. 톰은 야누스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늘 양쪽을 바라보고 있어, 괴로워하는 신이라고 말하는데요. 영화 속 인물들 또한 야누스와 같습니다. 톰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미망인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고뇌하고, 이자벨의 경우에는 깊은 상실 후에 기적과 같이 그녀를 찾아온 아이에 대한 사랑과 위기에 빠진 남편에 대한 사랑 둘 사이에서 괴로워합니다. 헤나의 경우에는 자신을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에 대한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사랑과 그리고 죽은 남편이 이야기 한 용서의 가치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누구 하나 탓하기 힘든 세 사람이 맞은 상황들은 ‘사랑’이라는 선택이 가지고 온 양면을 보여주는데요. 그들의 삶에 있어서 격정적인 파도 같은 시간 끝에 남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사랑’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세 사람이 지켜온 아이 ‘루시(그레이스)’입니다. 

 톰과 이자벨이 두 차례의 유산으로 슬픔에 잠겨있을 때, 루시는 그들을 다시 삶으로 인도합니다. 또한 남편과 아이를 모두 잃은 줄 알았던 헤나에게도 그레이스는 존재만으로도 삶의 희망이 되는데요. 이렇듯 어른들이 고뇌의 파고 속을 해맬 때, 루시(그레이스)의 존재가 증명하는 사랑의 가치는 흔들리지 않고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어린 루시는 자신의 이름을 ‘루시 그레이스’라고 정합니다. 그렇게 아이는 친모와 키워준 엄마가 지어준 이름 모두를 갖게 되는데요. 세월이 흐른 후, 엄마가 된 루시 는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휘말렸던 파도가 인도한 먼 곳에서 잔잔해진 일상을 바라보고 있던 톰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루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자벨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그 편지에는 오랜 세월동안 먼 곳에서 루시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이자벨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는데요. 루시는 다시 오랜 상실의 시간을 살아온 이자벨과 톰을 위로하며 혼자 남은 톰의 삶을 생명으로 비춥니다. 

 야누스는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얼굴이 있는 신입니다. 섬인 야누스도 섬의 양쪽 면에서 매일 같이 예상치 못한 날씨들이 펼쳐지지요. 하지만 신 야누스의 몸이 하나이듯, 야누스 섬에도 하나의 등대가 불을 밝히고 서있습니다. 이러한 야누스의 모습은 삶은 우리에게 둘 사이에서 고뇌하게 만들지만,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가치, 그 가치가 밝히는 빛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삶에 인 격렬한 파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길을 제시해주는 한 줄기 빛은, 루시 그레이스가 증명하는 ‘생명에 대한 사랑’입니다.




- 부드럽게 엮어가는 화면 그리고 자연이 주는 위로

 영화의 주된 사건은 루시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시작되는데요. 루시를 발견하기 전, 톰과 이자벨이 사랑에 빠지고 두 번의 유산을 겪는 초반의 과정이 부드럽게 연결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에서 조율된 피아노로, 그리고 그 피아노 선율을 따라 유산에 대한 치유와 다시금 찾아온 상실을 가볍지 않으면서 유려하게 연결해냅니다. 

 이 영화가 보는 이의 마음을 적시는 데에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눈과 귀를 통해 마음을 가득 채우는 자연이 있습니다. 특히 톰과 이자벨의 행복과 불행이 펼쳐지는 야누스 섬에서의 이야기에서 야누스 섬의 격정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이 평화로운 두 모습이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보는 이에게 전해집니다. 묵묵히 흘러가는 자연의 풍경은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을 무심하게 대변하는 공간 이전에, 보는 사람에게 태초적인 자연이 주는 평화와 숭고를 느끼게 해주는데요. 인물들의 대사, 배경음 사이 혹은 전면으로 주어지는 야누스 섬의 풍경이 담긴 소리들에서 자연이 인물과 관객에게 주는 무심한 위로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피 투게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